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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조선의 공예(朝鮮の工藝), 1942

한지형

『조선의 공예』, 평양상공회의소, 1942, 22×15, 131쪽
(좌) 표지  (중) 목차  (우) 내지. 낙랑칠기-용문갑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는 조선의 공예와 산업을 육성하는 취지로 대한제국에서 설립한 1904년 상공학교를 해체 및 개편하고 1907년 공업전습소를 설립했다. 공업에 관한 실습을 목적으로 염직, 금공, 목공, 도기, 토목, 응용화학 6개 과목이 개설되었다. 1912년 산하에 중앙시험소를 설치하였는데, 공예와 공업기술에 관한 최초의 관립 연구기관이었다. 시험소는 조선의 전통과 공예, 공업원료에 대한 기초조사 및 경제적 이익이 높은 도자기, 한지, 옻칠, 피혁, 전통양조 분야에 연구를 집중하였다. 

일제는 기초 원료 및 산업실태조사를 거쳐 1940년대에는 수출용 상품제작의 확대하는 정책을 펼쳤다. 특히 나전칠기 분야는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다고 인정되어 국내 장인 후원 및 생산에 주력하였고, 또 칠기제품은 특산품으로 인기가 높았다. 1925년 파리만국박람회에서 나전칠기작품이 은상, 동상을 수상하고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는 공예부를 창설했다. 1916년부터 평양의 고분발굴사업으로 출토된 낙랑칠기 유물은 일제의 대동아패권에 유리하게 해석되고, 1930년대 낙랑고분에서 발굴된 칠기 및 유물문양이 ‘낙랑문양’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및 국내에서 유행하고 평양을 중심으로 낙랑칠기제품이 제작, 지역 특산품으로 활용되었다.

본 책은 이러한 일제의 공예 정책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평양상공회의소에서 발간한 평양조사자료 21집으로, 내용은 1939년부터 3차례에 걸쳐 서선(西鮮, 평안도·황해도지역)의 공예에 관하여 개최한 「수출공예품에 관하여」, 「칠공예 진흥책」, 「토산품과 민예품」을 주제로 한 좌담회 내용을 수록하였다. 좌담자는 일본 상공성, 수출공예연합회, 동경미술학교, 중앙시험소 공예부, 낙랑칠기를 육성한 마츠이 민지로(松井民治郎) 등의 관계자들이 참여하였다. 평양부립박물관 소장 낙랑칠기 외 고려청자 도판 12개의 해설을 평양부립박물관장, 조선민예관 소장품 17점의 도판과 해설을 하마구치 료코(濱口良光)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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