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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고구려고묘벽화, 1958

한지형

『고구려고묘벽화』, 외국문출판사, 1958, 26×18, 64쪽, 표지


일본의 고구려 유적에 대한 관심은 1883년 광개토대왕릉비의 탁본을 입수하고 비문을 제국 일본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한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해석하면서 시작되었다. 18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은 도쿄제국대학의 인류학, 역사학, 건축학과 등의 학자들, 야기 소자부로(八木奘三郎), 세키노 타다시(關野貞), 이마니시류(今西龍) 등을 조선에 파견하여 조선지역을 조사하면서 고구려 유적의 조사도 시작되었다. 1909년 세키노 타다시를 중심으로 한 관학자들은 식민지화를 위한 토지조사사업의 일환으로 조선 전역에 걸쳐 고적조사사업을 착수하였고, 그 결과를 1915년부터 매년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고적조사보고』, 『조선고적도보』(전15권)에 수록했다. 세키노 타다시가 조사한 고구려 유적의 사진촬영본, 실측도, 모사도가 수록되었다.


『고구려고묘벽화』, 외국문출판사, 1958, 26×18, 64쪽, 내지. 강서중묘, 백호(현실 서벽)



일본에 의해 발굴되기 시작한 고구려 고분벽화는 1907년 프랑스 학자 샤반느(E. Chavannes)가 산연화무덤을 발견하여 잡지에 기고하면서 알려졌다. 고분벽화들은 고분의 환경상 모사가 함께 진행되었다. 훼손이 심한 벽화의 모사도는 중요한 사료가 되었으며, 많은 관심 가운데 모사도 전람회, 도록 출판이 이어졌다. 일제강점기 발견된 고구려 벽화무덤은 대략 27기이다. 해방 후 북한에서 체제가 확립된 후 1946년 4월 ‘보물, 고적, 명승, 천연기념물에 대한 보존령’을 발표·시행하고 1948년에는 ‘조선물질문화·유물보존위원회’를 구성하여 고대 유적을 발굴하기 시작하여, 1949년 황해도 안악군에 있는 안악 1, 2, 3호 고분을 발굴하였다. 안악고분 발굴은 가장 규모가 크고 다양한 내용과 인물명, 절대연대를 측정할 수 있는 획기적인 성과였으며, 월북한 서양화가 정현웅이 안악고분을 모사하여 50-60년대 국내외에서 전시가 개최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해방 후 북한에서 발굴, 조사된 벽화무덤은 대략 29기이다.

이 책은 1958년 평양 외국문출판사에서 발간한 고구려 고분벽화 화집으로, 일제강점기부터 1958년까지 발굴된 고분 15기의 벽화 60점을 수록했다. 벽화는 대부분 모사도이며 사진본이 몇 점 수록되었다. 서문에 따르면 현재 알려진 벽화고분은 50기가 넘으며, 고분 발굴을 계속 수행하고 있으며, 우선 수집 정리된 것들을 고구려벽화 1집으로 발간한다고 밝히고 있어, 당시 북한지역 유적 발굴이 진행중임을 알 수 있다. 영문판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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