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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곽인식, 작품 석(Work 石), 1982

한지형



곽인식(郭仁植, 1919-88)은 일본에서 선구적인 물성 탐구 작가로 평가받는 미술가이다. 1937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미술학교를 졸업하고 1942년 귀국하며 대구 미나카이백화점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가정을 이루고 수원중학교에서 미술교사로 근무하며 작업활동을 이어나갔다. 해방 후 어지러운 사회 분위기 속에서 1949년 일본으로 밀항하여 구두 수선공 등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던 중 1950년 친형이 빨치산에게 처형을 당하고, 대구의 숙부가 공산주의자로 오인 받아 처형을 당하였으며 부인마저 전쟁통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받게 되었다. 이와 관련되어 동경주재 한국대사관에서 그의 여권을 정지시킴으로 1982년 서울 현대화랑에서 국내 2번째 개인전이 개최되기 전까지 30여 년간 고국을 방문한 적이 없었다. 

193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일본에서는 추상과 초현실주의가 주요 흐름으로 이어졌다. 1942년 귀국 이전에는 독립미술협회전에서 활동하며 야수파 계열의 경향을 보여주었다. 1950년대에는 재건 이과회, 요미우리 앙데팡당 등에 참여하며 당시 일본의 아방가르드 작가들과 교류하였다. 전위작가들과 교류하면서도 절충적인 초현실주의적인 작품 경향을 보이던 곽인식은 1960년대부터 새로운 자신만의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게 된다. 모노크롬과 릴리프적인 요소에 전구, 나무젓가락, 바둑돌 등을 얹힌 물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특히 일본 모노하의 선구적 작품으로 평가되는 유리 작업을 1962년부터 선보이며 물성을 본격적으로 강조하기 시작했다. 유리를 깨고 깨어진 조각을 붙여 원래의 유리로 환원시키는 작업이다. 이 과정을 소재를 바꾸어 동판과 철판을 자르고 꿰매는 작품으로 선보였다. 1976년 이후에는 타마강에서 주운 돌에 점을 새기거나 쪼개고 다시 붙여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작업을 하였으며, 본 작품은 이 작업을 사진으로 찍어 실크스크린으로 작업한 판화작품이다.

작가는 10대 후반부터 일본에서 활동하며 고국을 그리워했다. 놋쇠나 종이 등의 소재나 어릴적 강변에서 놀던 기억과 고향의 향수들이 그의 작품 속에 그리고 스케치로 녹아 있다. 그의 작품에는 내재된 향수와 유리, 철판, 종이 등 사물의 특성을 표면의 문제로 환원하여 표현한 자신만의 독창적인 철학과 언어가 있다.


“나는 작가가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이 작품에서 내가 추구하고 싶었던 것은 물질 자체가 스스로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물질 자체가 말해주는 이야기를 조금 더 분명하게 우리가 들을 수 있도록 시각적으로 분명하게 대상의 존재성을 재건한다는 것이지요.” 

곽인식, 「표면을 추구하면서 표면을 초극한다」, 대담자 이일
『공간』 1982년 6월호


사물이 하는 말을 들어야 한다는 작가의 표현처럼, 작가는 작품을 통해 모든 사물의 깊이와 공간을 표면으로 시각화하며, 깨어진 것을 다시 재건하며 자연과 일체가 되는 존재론적 화합의 메시지를 주고 있다.

1982년 이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1985년 회고전, 2019년 100주년 탄생 기념전이 개최되는 등 국내에서 다수의 전시가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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