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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백남준 친필, 뉴욕 단상, 1968

한지형

이 자료는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의 친필원고로서 『공간』1968년 8월호을 위해 쓴 글이다. 당시 『공간』지 편집장이었던 미술평론가 오광수(1938- )가 소장하고 있던 자료를 본 관에 기증하였으며, 백남준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이전의 글로서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8장의 원고와 편집부에 쓴 편지 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백남준 『뉴욕 단상(紐育 斷想)』 친필원고, 1968, 28×22cm, 8쪽


백남준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일본으로 건너간 이후, 일본과 독일에서 음악, 미학, 미술사를 공부하였다. 독일에서 존케이지의 전위적인 음악에 큰 영향을 받았으며 몸으로 연주하는 액션음악, 행위미술, 플럭서스 운동, 전자음악, TV 등 새로운 매체를 탐구했다. 1963년 부퍼탈시 첫 개인전에서 미디어아트를 세계 최초로 선보였으며 1964년 뉴욕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비디오아트를 보여주며, 궁극적으로 참여와 소통을 위한 예술을 이어나갔다.

『뉴욕 단상』은 백남준의 전위적인 발상과 유머, 언어의 유희를 볼 수 있는, 운율이 있는 한편의 자전적인 산문시이다. 본문에서 자신을 시인, 전위, 맹꽁이, 모리배 자식이라 칭하기도 하며, 뉴욕을 “바야흐로 뒷집 아주머니가 순사 몰래 건너방 북창마루에 담거놓으신 약주의 거품이 지나다니는 문경출신 선머슴의 비공(콧구멍)을 10미터 밖에까지 유혹할 바로 그 “익음”에 미처 못 다다른” 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첫 단어 “시인”으로 시작해, 마지막 단락을 시인 이상을 칭송하는 자작시로 마무리했다. 애국유치원을 함께 다니던 단짝 친구 이경희를 생각하며 쓴 시이다. 친필에는 기록된 친구 이름이 인쇄본에는 익명으로 수록된 것이 흥미롭다. 한국의 문화와 당시 뉴욕의 첨단기술을 비교하듯 쓴, 그의 어린시절 한국에서의 추억들과 구수한 언어, 존케이지, 종이혁명, 비행택시 등 편린들은 유쾌하면서도 우수어린 정서가 깃든 작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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