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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상실과 소멸의 삶을 위한 정교한 메타서사 : 이주용, ‘극장 디오라마-환대의 장소’전

공주형

사라진 장소, 잊힌 서사, 은폐된 기억을 싣고 유예된 시간의 바다를 항해하던 이주용 작업이 어두운 도시 끝자락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이주용 작업의 이번 정박지도 호명 가능성이 희박한 장소이다. 

인천시 동구 송현동 100번지 양키시장. 철 지난 시대의 영광과 동경의 이름표가 현재의 쇠락의 증표인 이곳은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곧 들이닥칠 장소의 비극을 예고하듯 시장 가판은 텅 비었고, 영업을 중단한 가게의 녹슨 철문은 굳게 닫혔다. 이주용은 전쟁과 피난 같은 소란을 뒤로한 채 흐지부지 끝날 장소의 결말을 건져 올리고자 이곳에 의미심장한 작업 그물을 던졌다. 


이주용, 호랑이를 죽여라_극장 간판 5.4×3.6m, 양키시장 내 ©이주용


이주용 작업은 양키시장 마지막 시즌, 마지막 에피소드인 셈이다. 1950년대 중반 한국에서 태어나 지금은 미국에 정착한 이정화의 가족사를 담은 소설에서 착안한 극장 간판 〈호랑이를 죽여라〉는 폐쇄될 시장 최종회의 첫 장면이다. 이주용은 저마다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아닌 개인의 희생을 절댓값으로 요구했던 떠도는 삶의 보편 서사가 담긴 〈호랑이를 죽여라〉를 ‘극장 디오라마-환대의 장소’(2021.12.28-1.11, 양키시장·미림극장)의 압축적 인트로로 활용했다.

인천시 동구 송현동 92-7번지 미림극장. 이주용이 1957년 천막 극장으로 시작해 현재 실버전용관으로 운영 중인 이곳을 극적 서사의 무대로 전환시켰다. 월경(越境)을 상징하는 〈붉은 배〉는 극장 무대에 놓였고, 낙후한 시장과 극장 사이 풍경을 채집한 아카이브 사진 〈유예된 시간〉은 1층 벽면에 걸렸다. 유목의 시간이 새겨진 사물을 담은 LED 라이트 패널 〈극장 디오라마-장소, 사물의 기념비〉는 2층 관람석에 세웠다. 폐허의 장소, 적층의 기록인 영상 〈환한 어둠이 살고 있는 장소-양키시장〉과 〈사라진 장소-소환되는 사람들〉은 스크린 상영을 했다. 이 과정에서 극장 안과 밖의 경계, 객석과 무대의 위계, 관람석의 높이와 위치의 서열은 해체되고, 전복된다.


이주용, 유예된 시간_ 아카이브 사진, 미림극장 1층 ©이주용


일반적으로 디오라마는 현실에서 가상 세계의 환상을 보려는 욕망이 투영된 장치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주용은 환영의 고안물로 실재 세계의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위태로운 목선(木船) 위 이어지는 노래, 표류하는 장소 안 환한 어둠, 침묵하는 사건 속 지속되는 삶, 더뎌진 시간 뒤 끝나지 않은 희망 등. 이 모든 것들은 배제된 장소와 소외된 존재를 어두운 극장 안으로 하나하나, 또박또박, 기어이 호출해 낸다. 마르셀 프루스트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들렌처럼 망각했던 삶의 장소, 역사의 영토를 마침내 복원해 낸다. 


이주용, 붉은 배, 미림극장 스크린 무대 위에 설치, ©이주용
이주용, 환한 어둠이 살고 있는 장소_양키시장, Single channel 13분 28초, 미림극장 스크린 상영 ©이주용


부재하듯 현존하는 장소의 확증을 수집하고 배치하는 이주용 작업은 타자의 얼굴을 열어 보여주는 정교한 이동식 극장, 횡단적 소통의 장이다. 축적과 정주의 신화가 추방한 무명의 세계를 복원하는 다성적 사건의 기록, 중의적 서사의 연속이다. 그래서 이주용 작업의 현재, ‘극장 디오라마-환대의 장소’도 열린 결말의 메타서사일 수밖에 없다. 과거 행로와 미래 항로 사이에서 비로소 독해와 전유가 가능한.


- 공주형(1971- ) 홍익대학교 미술학 박사. 200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등단. 『문명은 어떻게 미술이 되었을까』 등 지음. 「박수근 회화의 타자의식 연구-레비나스(E. Levinas) 이론을 중심으로」 등 논문. 전 학고재 갤러리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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