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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유영교 조각에 대한 감상

신양희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서 열린‘유영교 회고전 구도(求道)’(3.3-3.26)를 보았다. 이름이 알려진 작고 작가였지만 작품을 접한 것은 처음이었다. 여러 질감과 덩어리감, 색감을 가진 돌에는 여인, 남자, 모자, 동자, 성인 등 여러 인간상이 나타나 있었다.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담고, 종교적인 이야기와 도상을 흡수하여 재창안한 작품들은 대부분 1980-90년대 제작된 것이었다. 조각가가 어떤 마음으로 그 시대에 이런 작품을 만들었을지가 궁금했다. 또한 너무나 섬세한 조각들을 마주하면서는 돌을 쪼고 다듬었을 작가의 세심한 손길이 가깝게 느껴져 경외심이 일었다.



유영교, 구도자Ⅰ, 1980, 이탈리아産 붉은 사암, 25×23×50cm 
이미지 제공: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갖가지 석재의 여러 특징은 작가가 다루고자 하는 인물과 어우러져 제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성인(聖人)은 이상화된 모습 대신에 그들이 겪은 인간적인 경험이 돌에 투영되어 진심 어린 모습으로 나타났다. 붉은 대리석을 이용한 거친 조각 <천신과 싸우는 야곱>(1982)은 신을 붙든 야곱의 애절함을 드러내고, <욥>(1982)의 트라베르티노는 신이 내린 온갖 고통으로 앙상한 뼈와 흘러내리는 신체에도 버티고선 욥의 모습과 일치되며, <베드로의 소명>(1982)에서의 포르투갈산 붉은 대리석은 신의 부름에 어리둥절해하는 베드로의 모습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이탈리아산 붉은 사암으로 제작된 <구도자Ⅰ>은 고운 석질과 표현 대상이 제대로 만난 조각이었다. 구도에 이르는 길은 진리를 향한 것이지만, 굴곡진 삶의 모습을 끌어안은 소박한 표정과 단정한 앉음새와 다르지 않음을 현시하는 듯했다. 이외에도 흰 대리석 자연석에 조각된 <우는 여자>(1983)의 진실한 눈물, 검은 대리석으로 만든 <웅크린 여자>(1983)의 경건한 고독 등을 마주할 수 있었다.



유영교, 베드로의 소명, 1982, 포르투갈産 분홍 대리석, 36×20×77cm 
이미지 제공: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1980년대의 조각은 인간이 처한 상황이나 내면적 갈등이 돌의 재질과 만나 감성적으로 외면화되었다면, 1990년대 제작된 종교적인 조각은 내면적인 고통보다는 형태적으로 양식화된 모습으로 나타난 듯했다. 나는 작가의 내면이 엿보이는 80년대 조각에 더 감동하였다. 하지만 전시 관람 후 도판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을 찾아보면서 작가에게는 유형화된 조각의 방법이 다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돌이라는 질료에 대한 다양한 표현은 작가가 오랜 시간 재료를 연구하고 부딪히며 몸소 깨우친 것이었다는 것, 여러 유형의 조각은 선대의 수많은 조각과 건축을 대면하고 자기화 과정을 거친 한 조각가의 성취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전시장 가장 안쪽에 자리한 <샘>(2000)은 돌과 물의 만남을 이룬 설치 형태의 조각으로 작가가 90년대 후반 움직이는 조각으로 나아갔던 작품 중 하나였다. 50대를 넘어서면서 작가는 강철과 동력 등을 이용하여 자연 소재를 모티브로 도시공간으로 나아간 공공조각을 선보였고, 그 실험은 작고하기 전 10년 동안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에 대해 작가는 “그동안 하던 일을 미완으로 접고, 상상의 이미지들을 하나하나 형태로 만들어 나가는 작업”이라 했다. 작업의 확장과 작가의 모험을 존중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우리 시대 도시 공간은 인간의 모습을 한 아름다운 석조각을 품어내지 못한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한 조각가의 전시를 보고 쓰는 이 글이 감상문의 수준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작가에게 죄송하다. 그렇지만 그가 남긴 조각은 내게 여러 질문을 안겼다. 전후 한국의 구상조각가들이 표현했던 인간의 보편성은 현실의 구체적인 인간과 역사를 어떻게 끌어안고자 했을까. 동시대 예술은 한국적이며, 전통적인 유산과 사상을 어떻게 음미할 수 있을까. 작품의 방향 설정부터 스스로 제작을 완결하는 조각가의 작품이 여전히 아름다움과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 신양희(1982- ) 경성대 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문화기획 행정 이론 석사 졸업. 대안공간반디 큐레이터, 미술문화잡지 『B-ART』 편집장, 경향 『아티클』 기자 역임. 2015-아마도예술공간 큐레이터. 2011 ‘이별과 애도’(대안공간반디), 2017 ‘옥토버
(OCTOBER)’(아르코미술관), 2019 ‘사회적 조각을 위한 방법 연구’·2021 ‘21세기 기념비-절대적인 것에 대하여’·2022 ‘렌트’(아마도예술공간) 등 전시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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