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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민화라는 용어, 과연 폐기될 것인가

윤범모

미부아트센터(관장 지영만)는 개관전의 하나로 피카소 작품전(2012.12.5-2.3)에 이어 오윤 목판화전(2.20-4.14) 그리고 민화(民畵) 특별전(4.19-6.23)을 개최하고 있다. 민화! 오늘날 수십만 명을 헤아리게 하는 민화 인구, 그것도 날로 급증하고 있는 추세,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왜 민화 붐? 현대인은 무엇 때문에 민화에 대하여 그토록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이번 미부아트센터의 민화전은 민화의 어제와 오늘을 확인하는 자리이다. 이를 위해 가회민화박물관(관장 윤열수) 소장의 민화 대표작과 송규태 등 현역 민화작가 20명의 대표작을 한자리에 모았다. 그야말로 민화의 과거와 현재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기획이다. 


‘민화’라는 용어의 한계
사실 민화라는 용어와 개념에 대한 학술적 정리가 완벽하게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민화라는 용어부터 재검토하게 하는 작금의 우리 사회이다. 민화라는 용어는 식민지 시대인 1937년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민중에 의해 태어나, 민중에 의해 그려지고, 민중을 위해 사용된 그림’이란 정의 아래 태어난 것이다. 조선의 ‘민화’는 그야말로 ‘민간 회화’ 혹은 ‘민중 회화’의 약칭처럼 사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1990년대에 이르러 학계는 궁정회화에 대한 연구 성과물을 내기 시작하면서 민화라는 용어와 개념에 대한 근본적 문제점을 재검토하게 했다. 여태껏 민화 걸작전시에 출품되었던 대표작이 사실은 백성 ‘民’과 무관한 궁중 장식화라는 것이다. 왕실을 위해 사용된 그림을 가지고 민화라고 부를 수는 없는 노릇, 하여 궁중회화의 약칭으로 궁화(宮畵)라는 용어가 대두되었다. 결국 대표작급에 속했던 채색화를 궁화라 하여 제외하게 되니 기존 민화의 입지는 좁아지게 되었다.

궁화와 민화의 영역 분할, 그렇다고 민화라는 용어와 개념에 대하여 명확한 범주 설정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 궁화와 민화는 품격과 재료상의 차이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공통점까지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궁화와 민화는 채색회화이다. 채색화는 우리 민족 회화의 골간에 해당한다. 민화의 특징은 작가명을 표기하지 않는 익명성에 있다. 그동안 미술사학계에서 푸대접했던 이유, 바로 작가명과 제작년도를 표기하지 않았다는 무명성에 기인했다. 궁화 역시 작가명이 생략되었지만 작가는 도화서 화원이었다. 왕공사대부 중심의 조선사회에서 중인 출신의 화원은 피지배계급으로 백성 ‘민’자의 전형적 계층이었다. 같은 화원의 그림을 가지고 왕실에 납품하면 궁화가 되고 민간에 유출하면 민화가 되는 모순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소비처가 왕실이냐 민간이냐에 따라 구분되는 그림, 하지만 똑같은 채색화, 다만 작품의 품격 차이만 있을 뿐 도상과 화풍 그리고 그림 속의 상징성과 사용형식은 동일했다. 이를 어떻게 신분계급의 차이만으로 궁화/민화라고 분리할 수 있을까. 특히 민화 작가 가운데는 지방의 유랑화공들도 많았겠지만 사찰의 불화와 단청을 맡았던 화승(畵僧)의 민화 작품 제작 사례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후기는 사찰경제가 극도로 피폐했던 시절이었다. 사찰은 경제적 자구책으로 민화 제작에 적극적이었고, 자연스럽게 작가명 표기를 생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들 화승의 민화는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얼마전 사단법인 한국민화센터(이사장 정병모) 주최로 ‘경주 민화 포럼’이라는 국제학술대회가 개최되었다. 이 자리는 민화라는 용어와 개념에 대한 ‘끝장 토론’을 감내한 3일간의 축제 마당이었다. 민화 애호가 300명 가량이 진지하게 지켜 본 학술대회장, 학자들은 기왕의 민화라는 용어의 문제점에 대해서 대체적으로 공감했다. 몇 가지 대안이 제시되었다. 기왕의 민화 성격이 길상적 요소로 가득하니 민화 명칭을 ‘길상화(吉祥畵)로 바꾸자, 혹은 장식화라고 부르자. 아니, 조선시대의 장식적이고 길상적인 채색화의 공식용어는 진채(眞彩)이니 민화를 진채라고 부르자.’ 나는 종합토론 사회를 보면서, 궁화를 민화 부분에서 제외시키는 방법은 최선이 아니라는 점, 특히 민화 붐을 이룩했던 시기가 조선 후기에서 20세기 초, 그러니까 대한제국 건설의 자주적 의식이 대두되던 시기였다는 점, 하여 ‘한민족의 채색화’라는 점을 강조해, ‘한채화(韓彩畵)’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수묵 문인화 중심의 회화사 연구 풍토에서 채색화를 강조하려는 숨은 의도도 곁들인 제안이었다. 더불어 기왕의 민화라는 용어를 계속 사용한다면, ‘민간’이 아닌 ‘민족회화’의 약칭으로서의 의미로 사용하자고 말했다. 하기야 이 땅에서 이루어진 그림치고 우리 민족회화 아닌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고구려 벽화, 고려 불화, 조선 초상화 등 특화된 용어가 있으니 조선 후기의 채색 민족회화를 지칭하는 약속으로서의 민화, 더나가서 ‘한채화’를 고려하자고 제안했다. 민화라는 용어의 대안, 하지만 그 구체적 합의점은 도출하지 못했다. 한국학자들끼리 갑론을박하고 있을 때, 발언권을 신청한 일본의 기시 후미카즈(岸文和) 교수는 기왕의 민화는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그림이었으니 차라리 ‘행복화(幸福畵)’라고 부르자는 깜짝 제안하여 주목 받기도 했다. 아, 행복이라. 민화라는 용어, 과연 폐기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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