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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미술관 큐레이터는 파리 목숨인가

윤범모

‘시립’ 대구미술관이 시끄럽다. 김선희 관장 취임 이래 평균 5개월에 한 명씩의 큐레이터가 줄줄이 해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큐레이터의 해임 이유는 계약만료라는 것. 계약만료, 이 부분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대구미술관은 근래 4명의 큐레이터를 미술관에서 벌판으로 내보냈다. 그 가운데는 2년 혹은 3년 근무자도 있지만 5년 근무 이후 재시험에 의해 다시 채용된 8년차 고참 큐레이터도 있다. 그러니까 미술관 개관 이전부터 ‘대구미술관 만들기’에 헌신적으로 일했던 큐레이터도 포함된 것이다. 계약기간이라는 관문에 걸려든 큐레이터들은 근무평가서의 내용은커녕 해임사유조차 알지 못하고 직장을 떠났다. 전문 계약직의 경우, 재임기간에 특별한 견책 사유가 없는 한 재계약하는 것이 상례였다.

하지만 이번 대구미술관은 해임 당사자들에게 재계약 불가에 따른 상식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번 해임 사태는 공무원 조례에 따라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 인사파행, 어떻게 볼 것인가. 학예실 근무자를 행정 부서로 인사 발령했다 몇 개월 뒤 원대 복귀시킨 미술관, 바로 파행인사의 단면이지 않을 수 없다. 전문직 큐레이터의 위상과 관련하여 이는 심각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에 한국큐레이터협회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또 인사권자인 대구시장을 상대로 공개 질의서를 보내기도 했다. 합리적 학예실 운영의 촉구를 위한 최소한의 조처였다.

전국 국공립미술관의 학예실 근무자들, 이들의 신분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공무원 신분으로 정년 보장이 되는 학예직,그리고 계약 전문직이 그것이다. 문제는 계약직 큐레이터의 신분보장문제이다. 계약직은 1년, 2년, 3년이라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의 근무 계약을 맺는다. 아무리 길어야 5년을 초과할 수 없다. 그래서 기관장은 인사권이라는 칼자루를 들고 계약직을 쥐고 흔들 수 있는 구조이다. 이번 대구미술관의 경우도 여기에 해당한다. 계약만료, 이는 법적으로 보장된 해고의 사유가 된다. 이런 제도를 훌륭하게 활용하면 미술관 활성화에 도움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만사는 상식의 선 위에서 이루어지는 법이다. 생각해 보자. 제대로 된 전시 하나 꾸미려면 보통 2-3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서구의 5년 경우는 차라리 사치라고 부르자. 자신이 기획한 전시를 자신이 개막할 수 없는 구조, 왜 이런 불합리한 제도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는가. 공립미술관 관장 신분 역시 계약직 큐레이터와 다를 바 없다. 능력의 유무와 무관하게 기간에 따라 무조건 수명을 갈음해야 하는 공립 미술관의 불합리한 인사제도, 이제 심각하게 문제 제기할 때이다.

책임있는 운영위가 내실있는 전시의 기초
공립 미술관의 인사제도, 너무 비전문적이다.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책임성 있는 운영기구의 활용이다. 이들은 인사위원회 혹은 근무평가위원회 같은 기구의 역할을 맡아 미술관 인사정책의 일정 부분을 책임지는 것이다. 당연히 여기의 위원은 권리와 의무를 부여받는 전문가여야 한다. 이들은 관장 초빙 문제로부터 큐레이터 채용과 근무기간 등 일체의 권리와 책임을 져야 한다. 관장이건 큐레이터건, 능력에 따른 엄정한 평가제도, 이를 활용한다면, 굳이 지금처럼 기계적으로 근무기간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전문직 인사제도 관련 법조항의 갱신 운동을 벌여야 한다. 뉴욕 현대미술관이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국립이나 시립 미술관이 아니다. 책임지는 이사회에서 미술관 운영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그만큼 전문성과 책임성이 있는 덕망 높은 인사들 가운데 이사를 선정한다. 이들은 결코 지자체 수장의 들러리가 아니다. 하지만 많고도 많은 우리 문화예술계의 위원회들, 대부분은 들러리로 박수나 치고 거마비 정도나 받는 수준, 안타까울 따름이다. 환골탈태 없는 공립 미술관의 운영제도, 현재와 같은 구조는 관장과 큐레이터의 전문성 확보에 역행하는 구조이다. 과연 학예직은 평생직인가. 미술관의 활성화를 원한다면 큐레이터의 전문성을 보장하는 제도 도입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바람직한 관장은 학예직의 신분 안정과 신바람 나는 학예실 만들기에 집중적으로 역할 해야 한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나의 소박한 희망 사항은 부질없는 소리라는 사실을 잘 안다. 기간제 임시직의 큐레이터, 이런 구조를 가지고 어떻게 세계적 미술관을 꿈 꾸려 하는가. 졸속의 전시준비, 그래서 부실한 전시장, 하여 대중으로부터 외면받는 미술관, 이런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려면, 심각한 반성의 기회가 있어야 한다. 아, 그러나, 그러나, 메아리 없는 절규, 역시 가슴만 아플 뿐이다. 지금 이 순간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단 한마디뿐이란 말인가. 대한민국 공립 미술관 계약직 큐레이터들은 모두 파리 목숨이다! 미술관에 ‘파리들’만 잔뜩 몰아놓고 도대체 무슨 일을 하겠다는 것인가. 외화내빈(外華內貧)의 공립 미술관, 이제 전환점을 돌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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