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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모든 작품을 불태우고 싶다

윤범모


국립미술품수장보존센터 설계공모 당선자 : 연초제조창, 존재하다, (주)원도시건축건축사사무소 (주)팀텐건축사사무소


“평생 작업한 모든 작품을 마당에 쌓아놓고 불 지르고 싶다.”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다. 자신의 모든 작품을 불태우고 싶다는 원로작가,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 작가는 많다. 이들의 하소연은 작품 수준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보관 문제 때문에 그렇다. 소수의 인기작가야 예외겠지만, 대부분 작가들은 사후의 작품보관 문제로 고민한다. 작품은 애물단지, 유족에게 넘겨봐야 짐만 되기 십상이다. 아니, 작품 관리를 엉성하게 하여 작가 사후의 명성에 먹칠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유족 덕분에 화명(畵名)이 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애물단지 미술작품, 왜 이런표현이 돌고 있는가. 

어떤 미망인이 날 찾아왔다. 이름 대면 알만한 화가의 미망인이다. 하지만 미술시장에서 그의 작품은 그렇게 인기를 끌고 있지 못하다. 세월이 흐를수록 집안 형편은 쪼그라들었고, 이런 형편의 반영이기라도 하듯 살림집의 평수는 줄어들었다. 방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유작들, 이사 다닐 때 마다 커다란 짐이 되었다. 작품 보관 때문에 방 한 칸 더 있는 집을 구해야 했다. 물론 다 돈과 관련 있다. 생활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짐만 되고 있는 작품들, 이 작품의 처리를 부탁하고 싶단다. 하지만 이런 딱한 사정을 듣고도 나는 뚜렷한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이런 상담을 한 경우는 정말 많다. 손상기의 경우, 미망인은 유작 가운데 우수작만 남기고 태작은 불태우고 싶다고 했다. 나는 작품 선별작업에 참여했고, 이른바 태작을 골랐다. 하지만 아무리 태작이라 하여 불태우게 할 수 없었다. 공간을 차지하는 짐, 이 문제를 덜어주면 그런대로 대안이 될 것 같았다. 결국, 액자를 모두 떼어내고 캔버스만 모아 진공 압축시켰다. 이불 보관하는 원리를 작품 보관에 응용한 것이다. 유작의 보관문제, 정말 심각하다. 어떤 집은 작품 상속 문제로 분란을 일으키고, 또 어떤 집은 살림이 어려워지면서 작품이 애물단지가 되었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노작가들의 한숨은 깊다. 자식에게 넘겨봐야 짐만 되는 작품들, 이들 작품의 처리문제가 정말 골치를 아프게 한다.

나는 미술관을 위하여 작품구입심의 회의에 자주 가는 편이다. 미술품감정가 단체의 수장을 맡았었기 때문인지, 혹은 평단의 현장에서 일하고 있어서인지, 전국 여러 미술관의 작품 구입문제를 함께 고민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난감한 안건은 작품기증 문제이다. 어떤 작가는 생애의 모든 작품을 미술관에 기증하고자 의사를 전달해 왔다. 경우에 따라 조건을 달기도 하지만 무조건 기증도 적지 않다. 하지만 수장고 시설 때문에 한 작가의 전량을 기증받을 수 없는 미술관 사정이다. 선별하여 작품을 받겠다면 유족은 전량의 처리가 아니므로 난색을 표한다. 그렇다면 이들 미술품은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하겠다는데도 받아줄 형편이 되지 않는 나라, 뭔가 정상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어떤 화가들은 분노의 표현으로, 아니면 체념의 표현으로, 이런 말을 내뱉는 것이다. “모든 작품을 불태우고 싶다.”

미술품은 나라의 보물, 보관문제를 …
 미술품은 나라의 보물이다. 현재 미술품의 평가가 어떻게 되든 미술품은 나라의 재산이다. 그런 재산을, 즉 국부(國富)를, 나라가 지켜내지 못한다면, 정말 그런 나라라 한다면, 절망이다. 미술품 창고를 지어 미술품 보관문제를 공공사업으로 펼치는 나라, 그런 문화국가가 대한민국이기를 염원한다. 지방 여러 곳에 미술품창고를 지어 미술품을 보관해주는 그런 제도를 희망하는 것이다. 이는 작고, 원로, 아니 젊은 작가들을 위해서도 절실한 문제이다. 작품 소장가들도 환영할 제도일 것이다. 나라가 작가나 소장가를 대신하여 미술품을 보관해주자. 최소한의 경비만 받고, 아니, 보관 창고비를 작품으로 대신 받고, 나라의 재산인 미술품을 관리해주자. 이제 원로작가의 입에서 이런 말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뭔가 대책을 마련하자.

“모든 작품을 불태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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