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17)‘업둥이’ 서예박물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윤범모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박물관이라 했다. 문화의 핵인 글씨 문화를 지키는 우리 겨레의 자존심이라 했다. 정말 자존심의 현장이고 싶었다. 하지만 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이는 많지 않았다. 바로 예술의전당 서예관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세계 박물관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웠던 서예박물관, 어쩌다 우면산자락에 낙하산처럼 툭 하고 떨어졌던가. 1988년, 얼떨결에 문을 연 서예관. 물론 태생적 불구의 몸은 서예박물관으로서의 역할에 발목을 잡았다. 우여곡절 끝에 오늘의 서예관은 한국 서예의 중심으로 존재감을 드높이고 있다. 그런데 박물관으로서의 기능상 문제점은 낙제점수에 머물러 있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예술의전당 서예관 중심으로 서예진흥정책 포럼이 열리고 있다. 몇몇 국회의원, 한국서예단체총연합회(그동안 사분오열되었던 서예계 단체들, 이번 기회에 한자리에 모이는 성과를 보였다), 그리고 서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예융성이 문화융성이다’라는 기치 아래 뜻을 모으고 있다. 얼마 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서예박물관 리노베이션 문제에 대한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서예관 설계를 맡았던 김석철 건축가는 발표에서, 서예관은 업둥이였다고 회고했다. 88년 올림픽 개관예정 건물을 전두환 대통령 퇴임 이전 행사로 바뀌면서, 그것도 용도변경 되어 6개월 만에 서예관으로 급조되었단다. 설계자 자신이 서예관은 불구의 건축임을 자인한 셈이다. 설계자와 같은 건축사무실에서 일하는 아키반의 한 건축가는 전시장 확대, 외벽장식 등 개축의 기획안을 제시했다. 집짓는 일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집을 운영하는 일, 사실 그동안 박물관/미술관 신축은 건물(형식)부터 지어놓고 내용은 뒤에 챙기는 악습이 횡행해 왔다. 그러니까 관장이나 큐레이터보다 건축가를 먼저 선임하여 신축공사부터 벌이는 퇴행현상을 답습했던 것이다. ‘서예관 지킴이’ 이동국 서예부장은 서예관 프로그램의 기획에 대하여 발표했다.

문자는 정말 문화의 핵심이다. 문자를 예술로 승화시킨 민족은 한 손가락으로 꼽는다. 특히 한자문화권의 자랑은 글씨가 예술이라는 것. 바로 서화일체 사상의 문화적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시서화 삼절 사상은 어느덧 사라졌다. ‘서화’의 시대는 가고 ‘미술’의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아니, 컴퓨터 시대의 글씨 쓰기는 천덕꾸러기 같다. 키보드 ‘치기’의 시대는 글씨 ‘쓰기’의 문화를 추방했다. 문자는 사상과 문화의 파수꾼이다. 지필묵의 장점, 날로 취약해지고 있는 이 부분에 대한 과감한 진흥정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예전에는 학교에서 습자시간이라도 있어 붓 잡을 기회라도 주었지만, 오늘날의 학생들은 붓 자체가 무엇인지를 모른다. 그러니 무슨 지필묵? 무슨 서예? 물론 오늘날 서예문화의 추락에는 서예가들의 책임도 없는 것은 아니다. 형식 중심의 글씨 쓰기는 생명력이 없다. 하여 인문학적 배경이 탄탄한 서예가의 출현이 기대되는 서예계의 현실이리라. 추사 김정희는 당대의 석학이었다. 추사체는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껍데기만 가지고 어떻게 사회를 이끌 수 있겠는가. 오늘날 서예박물관의 초라한 현실은 결국 서예계의 취약한 현실을 반영하는 슬픈 자화상이지 않은가.

차라리 신축으로 문자문화의 자존심 회복 기대
예술의전당 서예관의 개축 운동에 즈음하여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 리노베이션의 총 예산은 180억 원이다. 차라리, 이런 정도의 예산이라면, 좀 더 보태 새로 멋있게 지으면 좋을 것 같다. 태생부터 불구인 건물을 부분적으로 손질한다고 얼마나 더 좋아질 것인가. 예산 증액이 어렵다면 차라리 180억 원짜리 신축 건물을 지으라고 권하고 싶다. 창고형으로 단순하게 지으면 그 정도의 예산으로 새 건물을 못 지을 것도 없다. 더불어 건축 설계 담당은 공개 응모 형식을 강력하게 추천하고자 한다. 새로운 감각에 의한 접근방법이 소중하다. 업둥이를 만들도록 방조 내지 동참한 건축가의 설계참여는 대외적으로 설득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헌것과 새것을 섞으면 결국 새것도 헌것이 되고 만다. 예술의전당 서예관의 획기적인 발상 전환을 촉구하고 싶다. 서예박물관, 차라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그리고 문자가 문화의 핵심임을 다시 한 번 명심하자.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