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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베니스비엔날레의 ‘토종’ 임흥순

윤범모

위로공단, 2014-2015, HD, 95분


이 무슨 희소식인가, 발신지는 베니스비엔날레, 참으로 감격스러운 순간이다.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는 개막과 함께 수상자 명단을 발표한바, 은사자상 수상작가로 한국의 임흥순을 선정했다. 해외 미술행사에서 한국 작가가 받은 상 가운데 최고 수준이라는데, 이를 베니스가 안겨 주었다. 이번 수상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30대 중반의 작가에게 주던 관례를 깨고 40대 중반 작가를 선택했다는 것, 일반 미술작품이 아닌 영화작품을 선택했다는 것, 그것도 노동문제를 다룬 95분짜리 기록영화라는 것, 이번 베니스는 정말로 쾌거를 이룩했다.
수상작 <위로공단>은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현실을 감내해야 하는 여성 노동자들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작가의 가정환경에서 비롯된 살아 있는 증언이기도 하다. 봉재 공장의 시다(조수)였던 어머니와 판매 점원이었던 여동생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여성노동의 의의를 본격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베트남과 캄보디아 같은 아시아 지역까지 관심의 폭을 넓혔다. 바로 소외계층에의 애정어린 시선이리라. 예술은 사회변화의 도구라는 의지의 표현과 같다. 임흥순 블로그의 작가 소개 가운데 이런 문장도 눈길을 끈다. “미술작가이자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족의 개인사를 시작으로 도시공간, 그 안의 개인의 역사 나아가 지역/공동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사진, 비디오, 설치미술, 공공미술 프로젝트 등으로 작업해 왔다.” 멋진 소개 글이다. 임흥순은 개인전 ‘행복으로의 초대’(2009.5.15-5.30, 스페이스 크로프트)를 개최하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긴 바 있다.
“어느 사주의 내용처럼 집안의 운세가 다 되었는지 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을 팔고 셋방살이를 시작했다. 단칸방, 불법개조로 만든 방, 다시 단칸방, 지하 그리고 임대아파트까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부모님은 아파트가 세워진 지금의 공간에서 크게 벗어난 적 없이 50년 가까이 동네 토박이로 지내고 계신다. 어머님의 경우 열아홉 살 때 까지 태어나고 자란 실제 고향을 삶 속에서 지운지 오래된 것 같다. 아마도 지금 살고 있는 임대아파트가 그 어느 고향보다 편하고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더 이상 갈 곳도 없고, 떠나고 싶지도 않은 그런 고향.”
임흥순은 빈곤을 딛고 일가를 이루어 우리에게 각별한 감동을 안긴다. 그는 그 흔한 해외 유학파도 아니고, 게다가 이른바 일류대학 출신도 아니다. 아니 대학조차 어렵게 겨우 마친 우리 사회의 밑바닥 출신이어서 더욱 장하고 거룩하다. 토종 임흥순의 장쾌한 신화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임흥순의 작업 가운데 <아버지의 물건>(2013)이란 것이 있다. 진열된 작품은 망치, 스패너, 줄자, 시멘트 조각 등이다. 이를 두고 작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얼마 전 어머님이 혼자 살고 계신 임대아파트 베란다에서 시멘트가 묻은 망치를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순간, 저녁마다 옷에 시멘트를 묻히고 들어오셨던 아버지를 떠올렸습니다. 미장, 벽돌공, 흔히 말하는 막노동자 잡부 일을 해 오신 아버지, 불로 태울 수 없는 것이기에 남아 있었겠지만, 아마도 아버지에게 가장 중요했던 물건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공구들은 아버지가 일할 당시 쓰던 것으로 10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이런 작품, 감동 그 자체이다. 진정성보다 훌륭한 감동의 원천은 없을 것이다. 진실, 그보다 가치 있는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임흥순은 화장한 얼굴보다 민얼굴로 사회와 대면했다. 여기서 진실의 힘이 크게 작동하여 감동의 그릇, 바로 작품과 이어졌다. 근래 임흥순은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비념>(2013)을 발표했다. 나는 이 작품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달콤한 이슬’(2014)로 초청했다. 상처를 증언하고, 치유하고,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창출하자는 전시기획과 <비념>은 맞닿았기 때문이다. 전시 기간 중 이번 베니스비엔날레의 총감독 오쿠이 엔위저는 광주에 왔다. 그는 임흥순을 주목했다. 그 결과 베니스에서 희소식을 안겨주게 되었다. 토종 임흥순의 이번 수상은 그 어떤 작가의 수상보다 의미가 크다. 작가의 살아온 내력으로 보거나, 작품의 주제로 보거나, 특히 출신 대학(경원대, 현 가천대)으로 보거나,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나는 임흥순이 졸업미전에 출품한 <내 사랑 지하>(2000) 영상작품의 충격을 지금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다. 지하 단칸방에서 지상으로 이사 가는 날의 기록, 빈곤조차 작품의 소재가 되어 당당하게 활용할 수 있는, 그 작가 정신에서 나는 이미 ‘좋은 작가’의 싹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문하’ 임흥순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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