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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어떻게 하면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어요

윤범모

일베충, 주목경쟁 3


미대생에게 흔히 듣는 질문 가운데 하나, “어떻게 하면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어요”, 정말 어려운 질문이다. 미대생 아니 화가라면 그림 잘 그리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살 것이다. 그런데 ‘좋은 그림’은 쉽게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창작은 가시밭길이라고 했다. 진통 없는 생산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림 잘 그리는 방법에 관한 고민은 학생만의 문제도 아니다. 기성작가, 심지어 원로화가에게서도 그런 질문을 받은 바 있다. 아, 어떻게 하면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까.
하기야 대답은 이미 나와 있다. 바로 ‘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 이것 이상 좋은 대답이 어디에 있을까. 나는 화가에게 말한다. 만권의 독서를 하지 않고, 만리를 여행하지 않고, 어떻게 그림 그릴 배짱을 가지고 있느냐고. 세상을 보는 눈, 이것처럼 중요한 것이 어디에 있을까. 하여 나는 미대생에게 숙제를 낸다. 세계문학 전집 100권 읽기! 인문학적 배경의 부실은 그만큼 그림 바탕의 허술함을 의미한다. 이런 이야기도 사실은 일반론이다.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 하여 나는 나의 ‘미술비평’ 강좌를 통하여 수강생과 ‘그림 잘 그리기’의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기로 했다. 일종의 창작방법론에 대한 하나의 시안이라고 할 수 있다. 한 학기 동안 미대생과 나는 머리를 맞대고 창작의 쓴맛과 단맛을 체험하고자 그동안 몇 차례 시도했던 프로젝트였다.
나의 창작방법론, 무엇보다 나는 수강생들에게 공동작업을 요구했다. 일단 창작이라 하면 개인 작업이 기본이다. 하지만 나는 짧은 시간의 효율성을 고려하여 팀 작업을 중요시 여겼다. 이를 위해 사회라는 대주제 아래 소주제를 제안하게 했고, 주제에 따라 팀을 선택하게 했다. 팀 마다 조장(組長)을 두어 학습진행을 돕도록 했다. 이렇게 하여 팀을 이룬 학생들은 매주 연구와 현장 조사 그리고 자신의 언어로 바꾼 보고서를 발표하도록 했다. 학구적 접근과 현장체험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주제에 대한 논리적이고도 체계적 이해 없이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없음을 알게 했다. 더불어 토론문화의 체험도 과외의 소득이었고, 사회를 보는 눈을 새롭게 얻은 것도 커다란 소득으로 떠올랐다. 이런 과정에서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멤버끼리 조화를 이루지 못해 팀을 떠난 학생도 생겼고, 심지어 어떤 팀은 중도 해체되기도 했다. 이런 진통의 연속에서 수강생은 주제를 체득화 시켰고, 나름대로 논리를 개발했고, 또 숱한 스케치 작업을 통하여, 창작의 실마리와 만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 본 작업에 돌입했다.

매주 반복되는 토론과 더불어 주제의 심화 작업 그리고 작품화 과정, 이런 과정과 결과를 미술계에 보고하고자 했다. 이렇게 하여 분당 오리역 부근의 암웨이미술관에서 ‘가천대역에서 오리역까지’(7.8-7.24)라는 제목의 전시를 열었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 이색 전시라면 이색 전시였다. 이번 전시의 소주제는 독신주의, 안전 불감증, 장애인, 오타쿠, 일베 등으로 이루어졌다. 시각장애인을 주제로 선택한 팀은 수도권의 거리를 조사하면서, 점자 블록의 문제점을 수집했다. 정말 상식 밖의 점자 블록이 많았다. <가지 못할 길>은 너무 많았다. 그런 블록을 따라 걷다 보면 엉뚱하게 차도로 연결되어 목숨을 내놓아야 할 정도였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블록의 엉터리, 마치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민망했다. 하여 학생들은 점자 블록의 기능성을 무시해야 했고, 결국 액자 속의 작품으로 모셔지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일간베스트, 사회문제의 하나이다. ‘일베’는 정치적 극우 성향, 여성혐오, 특정지역 비하, 역사 왜곡 등 특이한 집단의 이름이다. 이 특성을 작품화한 ‘일베충’ 팀은 몇 가지 시안을 제시했는데, 그 가운데 <주목경쟁>이란 영상작업은 눈길을 끌었다. 짧은 시간 안에 사이트에 주목받아야 하는 경쟁구도는 자극적인 언행을 남발하게 했고, 그러다 보니 패륜적이고 몰상식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주목경쟁>의 주인공(이주호)은 결국 이를 위해 소변기에 얼굴을 박고 거꾸로 서서 일베의 상징 자세를 취했다. 정말 상식 밖의 일이었다. 
어떻게 하면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어요. ‘가천대역에서 오리역까지’ 참여한 신진작가는 조그만 목소리나마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주제에 대한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이해 아래 부단한 실험, 그것도 진정성 있는 도전의식이 중요하다. 주제에 대한 탐구 과정과 공동작업은 새로운 개안(開眼)을 안겨 주었다. 세상을 보는 독자적인 눈의 중요성도 깨달았다. 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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