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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물방울’보다 비영리 전시공간의 전시가 좋았다

윤범모

AR TOWNS-와랑와랑 모다드렁 전시전경


바람 부는 날, 섬에 갔다. 제주. 특별한 목적지도 없이 그냥 돌아다녔다. 렌트카는 달려줘야 제 기능을 발휘하기 때문.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이라는 곳을 지나가다 예술내음이라도 맡아볼까 하여 차를 멈추었다. 낯선 건물이 눈길을 끌었다. 간판은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이라 했다. 제주도는 김창열 화가의 기증작품을 기본으로 하여 개인 미술관을 신축했다. 제주와 특별한 연고도 없는 생존화가의 개인 미술관, 이런 영광스런 일이 어디에 있을까. 예전에 서귀포에서 이중섭미술관을 건립하려 할 때, 제주 미술인은 반대의 깃발을 들었다. 작고한 ‘국민화가’이고, 더군다나 서귀포는 전쟁 당시 화가의 피난처이고, 또 피난시절의 오두막이 남아 있어 그곳을 기리는 사업을 하겠다는데 반대가 심했다. 당시 나는 중문단지 신라호텔에서 이중섭 학술대회를 주관한 바 있다. 제주에 미술관을, 그것도 이중섭미술관을 신축하는 것은 박수칠 일 아닌가. 벌써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오늘날 서귀포의 이중섭미술관은 연간 억대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관광 명소로 부상되었다. 그러나 이번 김창열미술관 건립에 제주인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나는 모른다. 격세지감이라는 단어만 떠오른다.

김창열 작품은 한마디로 ‘물방울’이다. 화가는 물방울 브랜드로 성공했다. 10년도 아니고, 20년도 아니고, 30년도 아니고, 단일 소재 한 가지만 가지고 평생 그림 그릴 수 있다는 것, 대중은 놀랄 따름이다. 그런 화가의 ‘지구력’에 그저 감동할 따름. 그렇다면 최소한의 표현에 담은 그 내면의 철학은 무엇인가. 나는 이 부분을 아직도 잘 모르고 있다. 김창열미술관은 그렇지 않아도 ‘심심한’ 물방울을 더 심심하게 진열해 놓았다. 미술관을 무슨 신전(神殿)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나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하기야 ‘물방울 신(神)’을 모시는 곳이라면 바로 신전과 다를 것 없을 듯. 추상회화, 아니, 미니멀리즘의 약점은 서사성을 삭제했다는 점이다. 오늘과 같은 스토리텔링 시대에 이야기를 죽이는 역방향을 강조하다니! 그래도 좋다. 물방울에서 어떤 시대정신, 어떤 상상력, 어떤 현실을 얻을 것인가. 불행하게도 나는 해답을 얻지 못하고 미술관 문을 나서야 했다. 썰렁한 전시실을 나오니 세찬 바람이 응대해 주었다. 바람 부는 섬이었다.

그런데 바람 부는 곳은 따로 있었다.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진짜 젊은 바람이 불고 있어 신선했다. 늙은 물방울 바람과 달리 열기가 넘치고 있었다. 특별전 이름은 ‘AR TOWNS-와랑와랑 모다드렁(2016.11.18-1.29)’이고, 바로 비영리 전시공간 및 창작공간 아트 페스티벌이었다. 대안공간의 활동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본다. 그동안 대안공간이 주는 이미지는 화려함과 반대였다. 비영리인 데다가 개인 차원의 가난한 공간 운영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 미술관 전시는 대안공간의 호사스런 잔칫상과 같았다. 제주도립미술관이 그런 마당을 제공했다. 대안공간 활동의 협력자로서 공립미술관이 협업체제를 실현했다는 점, 멋있었다. 이번 전시는 제주지역의 대안공간을 비롯해 전국의 주요 공간이 참여했다. 각 주체마다 1명의 작가를 추천하여 꾸민 전시였다. 대안이라는 특성답게 전시장은 싱그럽고 도전적이고 참신한 발언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와랑와랑 모다드렁’을 만끽했다.

우리에게 있어 비영리 대안공간이라 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최초의 대안공간이라면 1980년대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에서 문을 연 ‘그림마당민’을 든다. 나도 운영위원으로 참여하여 공간 운영에 고심했던 추억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약 30년의 세월이 흘러 현재는 이태원의 ‘아마도예술공간’의 법적 대표로 등록하여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대안은 단어 그 자체가 의미하듯 주류에 대한 반작용의 성격이 있다. 예술이라는 단어 속에 그리고 창작이라는 단어 속에, 저항과 도전 혹은 새 것 추구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면 그게 바로 ‘대안’의 속성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예술문화 발전을 위해 대안공간에 보다 많은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나는 물방울보다 대안에서 제주 체류의 의미를 찾았다. 이런 고백을 하는 나 자신은 불행한 것인가, 행복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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