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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삼성미술관리움 홍라희 관장의 퇴진

윤범모

삼성미술관리움


삼성미술관리움의 홍라희 관장이 ‘일신상의 이유’로 자진 사퇴했다. 그동안 미술계 영향력 1위의 인물로 꼽히던 ‘거목’의 퇴장인 것이다. 이 같은 사태를 바라보는 미술계는 안타까움과 더불어 착잡하기도 했다. 박수받으면서 떠나는 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홍라희 관장처럼 비단길만 밟고 살아온 한국 여성도 없을 것이다. 법무부 장관을 지낸 홍진기 가문의 후예로,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의 며느리이자 이건희 회장의 부인, 그리고 삼성 후계자 이재용 부회장의 모친이기 때문이다. 『중앙일보』의 홍석현 회장과 리움의 홍라영 부관장은 동생이다. 화려함의 극치라 할까. 하지만 오늘의 삼성 현주소는 위기 즉 홍라희 시련의 꼭짓점이다. 이건희 회장의 장기 병상 생활에 이어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이런 상황에서 관장직 사퇴선언이 나왔다.
홍라희 관장의 이번 사퇴선언은 두 번째다. 2008년 삼성그룹 비자금 특검 사건 당시 관장직 사퇴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당시 3년 만에 복귀했다가 이번 다시 반복하게 되었다. 미술관장 홍라희, 이는 어떤 의미를 주는가. 그는 서울대 응용미술과 출신으로 중앙일보사 상무이사(1985-98), 삼성미술문화재단 이사(1993), 호암미술관 관장(1995), 삼성미술문화재단 이사장(1996-98), 삼성미술관리움 관장(2004) 등을 지냈다. 삼성가의 미술사랑은 이병철 회장 시절부터 유명했다. 이 회장은 자신의 수장품으로 용인에 호암미술관을 개관했고(1982), 중앙일보사가 신사옥을 지을 때 호암아트홀과 더불어 대형 전시공간인 갤러리를 신설하도록 했다(1984). 
호암갤러리는 개관 당시의 명칭이 ‘중앙갤러리’였듯 원래 중앙일보사 소속이었다. 그러다가 뒤에 삼성미술문화재단으로 소속 변경되었고, 한남동 리움으로 발전되었다. 명실공히 한국 최고의 사립미술관으로 위상을 정립했다. 호암갤러리 개관 당시 필자는 큐레이터라는 직함으로 실무 책임을 맡았다. 당시 덕수궁에 있었던 국립현대미술관은 학예실이 없었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큐레이터라는 직제가 없었다. 오늘날 미술관 업계에서 필자를 두고 ‘뮤지엄 큐레이터 제1호’라고 부르는 배경이기도 하다. 호암 개관 일로 분주할 때, 홍라희 관장은 중앙일보사 상무 직함을 가지고 개관업무를 도왔다. 어느 날 홍진기 회장이 호출했다. 개관전 진행과 관련된 내용 때문이었다. 필자는 ‘금기작가’ 이응노와 박생광 등의 회고전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대답했다. 홍 회장은 그것도 좋지만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새로운 분야를 우선 소개하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아르누보 유리공예전’이었다. 파격이었다. 그 날 이후 필자는 홍 회장에게 유리와 아르누보에 대한 ‘개인 레슨’을 받았다. 당시 홍 회장은 삼성코닝회사도 맡고 있기는 했지만 유리에 대한 전문지식은 수준급이었다. 그는 아르누보 작품도 다수 소장하고 있다고 했다. 뒤에 필자가 미국 여행할 때, 유리의 고장 코닝 시를 우선 방문한 것도 홍 회장의 역할 때문이었다.

미술관도 그렇지만 어느 조직이나 기구는 제도와 직제에 의해 움직이게 되어 있다. 특정 개인의 역할도 중요하겠지만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기업 후원에 의한 한국의 사립미술관들은 비슷한 운영체제를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관장실을 기업의 가족이 맡고 있다는 점이다. 개관 초기는 예산 확보나 체제 구축 등을 위해 가족의 역할도 중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미술관 운영 역시 회사처럼 전문경영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미술관 운영은 미술관에서 뼈를 묻을 전문가의 몫이라고 본다. 그래서 전문가를 키우는 제도적 장치가 중요하다. 물론 큐레이터나 관장은 전문성과 더불어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 있어야 한다. 
호암미술관은 커다란 전환점을 맞았다. 미술관의 선두주자로 뭔가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이제 특정인이 아닌 시스템에 의한 운영을 도모할 때이다. 그래서 귀족주의라는 이미지를 벗어내고 보다 대중 친화적인 미술관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이런 말을 왜 하는가. 이번 리움은 홍 관장 사퇴와 더불어 준비하고 있던 김환기 전시까지 취소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전시 취소사태는 미술관이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지 않았다는 반증 같아서이다. 시스템이 건실한 조직이 건강한 조직이다. 리움의 새로운 면모를 기대하면서 전화위복이라는 말을 건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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