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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개관 50년의 뉴욕 링컨센터에서

윤범모

링컨센터 메트로폴리탄오페라단 전경 ⓒLincoln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


뉴욕 링컨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돈 조반니>를 보았다. 이 작품은 <피가로의 결혼>, <마술 피리>와 함께 모차르트 3대 오페라의 하나로 유명하다. 1787년 프라하에서 초연된 이래 음악 애호가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고 있는 명작이다. 17세기 스페인이 무대. 스페인 문학의 단골 등장인물인 돈 후안을 모델로 했다는 것. 원제 속에 ‘벌 받은 탕자’라는 말이 있었듯, 바람둥이 귀족을 풍자한 작품이기도 하다. 나는 이 자리에서 오페라 혹은 모차르트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개관 50년 링컨센터의 명성과 그것의 유지 방법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 한다. 물론 우리는 이것의 해답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 전문성과 열정 그리고 도전의식. 이는 예술활동에서 꼭 필요한 키워드이리라. 사실 여기서 이런 거창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링컨센터의 커다란 오페라하우스를 꽉 채운 관객은 무엇보다 예술에 대하여 진지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예술 우대’라는 생활 속의 습관을 자연스럽게 풍겨주는 것 같았다. 하기야 예술은 봉안물이기 보다 즐기는 그 무엇이 되어야 생명력이 있다. 객석을 둘러보니 중년 이상의 정장 차림 ‘기성세대’가 많았다. 물론 오페라라는 고전 장르와 비싼 입장료는 젊은 층과 거리를 두게 했을 것이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아직도 18세기의 음악에 열광하고 있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도 던질 수 있다. 음악의 경우, 무대에 올라 공연하는 음악가들은 모두 생존 인물인데, 그들이 선택하는 음악은 17-19세기의 ‘구닥다리’가 아닌가. 언제 동시대 작곡가의 창작품을 우선하는 무대가 될까. 이런 질문은 음악계를 아프게 하는 대목이리라. 그건 그렇고, 나는 <돈 조반니> 무대를 음미했다. 한마디로 훌륭했다. 국제무대라는 것, 그것도 국제무대의 정상이라는 것을 만끽했다. 링컨센터는 어떻게 하여 이런 명성을 획득했고, 또 유지할 수 있을까.
뉴욕의 공연장에 들어서면 조그만 크기의 소책자 『Play Bill』을 나누어 준다. 당일 프로그램에 대한 해설서이다. 이 소책자를 통하여 작품 해설은 물론 출연자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나는 이런 소책자를 커다란 상자 하나 가득 모았던 시절도 있다. 그것은 뉴욕 시절의 전리품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다 추억의 저 건너편으로 사라졌지만. 링컨센터의 경우, 이 소책자의 뒷부분을 보면 숱한 사람들의 이름이 여러 페이지에 걸쳐 소개되어 있다. 바로 기부자들의 명단이다. 5만 달러 이상을 비롯해 3만 5,000달러, 
2만 5,000달러, 2만 달러, 1만 달러 등등 기부액수에 차등을 두어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 바로 오늘의 링컨센터를 지탱시켜 주고 있는 갸륵한 이름들이다. 물론 우리 사회가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 하지만 모든 것을 돈으로 다 해결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적 토대’ 없는 예술활동은 가능할까.

우리는 최순실이란 ‘역사적 인물’을 알게 되었다. 국정농단이라는 희대의 사건을 연출하여 현직 대통령을 탄핵하고 결국 감옥까지 직행하게 한 주인공이다. 별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이번 사건은 대기업에 의한 거금의 기부금 출연, 그 강제성 여부가 쟁점으로 떠오르게 했다. 한편 박근혜 정권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예술가를 관리했다. 유신 시절의 행태가 반복되어 결국 박근혜의 불행, 아니 우리 국민의 불행으로 이어졌다. 기부문화는 자발성에 의해 빛난다. 기업의 약점을 잡고 강제적으로 돈을 내게 하는 것은 기부문화의 정착에 멍들게 하는 악행이다. 최순실 사건은 그렇지 않아도 열악한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를 더 악화시켰다. 불행한 일이다. 대기업으로부터 고사리손까지 문화예술을 위한 기부 행렬, 그것도 자발적이면서도 즐거운 행렬, 과연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을까. 물론 이를 위해 정부는 세제 혜택은 물론 기부문화 정착을 위한 정책적 뒷받침을 실행해야 한다. 

나는 링컨센터를 나오면서, 언제 우리 사회는 문화예술을 위하여, 십일조 개념은 아니더라도, 애정을 듬뿍 나누어주는 시절이 올까, 상상을 잠깐 해보았다. 과연 그것은 상상에 불과한 것일까. 링컨센터의 명성은 그냥 생긴 것은 아니리라. 링컨센터 50년의 역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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