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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국제경쟁력 있는 채색 길상화를 위하여

윤범모

폭염의 여름. 전시장도 뜨겁다. 그 가운데 하나, 바로 이른바 민화 전시이다. 현대화랑은 ‘민화, 현대를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조선 시대 꽃 그림’ 특별전을 열었다(8월 19일까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은 ‘김세종민화컬렉션-판타지아 조선’전시를 열었다(8월 26일까지). 글자 그대로 주옥과 같은 명품들이 비장되어 있다가 세상에 나와 관객을 호사시켜 주었다. 정말 세계적인 ‘우리 그림’이다. 이런 명품들을 두고 구차스럽게 ‘민화’라고 부르고 있다니, 뭔가 억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야나기 무네요시가 명명했다는 민화라는 용어, 그는 이른바 민화를 민간의 무명화공에 의한 대량생산된 그림 즉 하수의 저속한 그림이라고 했다. 무조건 폄하하려고 그렇게 명명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민화’라는 용어는 문제투성이다. 이른바 민화는 무명 하수의 저속한 그림이 아니다. 당대 최고의 화가가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조형성을 발휘해 창작해 낸 작품이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이런 그림을 볼 수 없으니, 정말 세계무대에서의 경쟁력 1순위 그림이라 할 수 있다. ‘민화’의 특징은 형식적으로 채색이고 내용적으로는 길상(吉祥)이다. 행복을 담은 색깔그림. 상징성과 장식성이 크기 때문에 각광을 받고 있다. 오늘날 민화 그리기 대열에 동참한 애호가들만 해도 10만 명이 넘는다. 이런 ‘민화 열기’를 국제무대로 격상시켜야 할 때이다. 미술산업 차원에서도 ‘채색 길상화’는 경쟁력 있다. 나는 민화를 ‘힐링 아트’라고 본다. 이런 ‘우리 그림’이 국립중앙박물관 같은 국가기관에서 전시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민화계에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민화인은 취미생활로 입문한다. 그러니까 모사 중심 ‘남의 그림’을 베끼기로 훈련한다. 여가선용의 취미생활이라면 좋다. 하지만 모사화를 들고나와 ‘나의 창작품’인 것처럼 전시하는 행위는 문제가 크다. 게다가 남의 그림 베끼기로 작가 행세한다면 더 심각하다. 남의 그림을 베낀 것은 표절이다. 내용적으로는 저작권 위반에 해당한다. 범법행위라는 용어를 망각해서는 곤란하다. 타인의 창작성을 보호해 주어야 할 처지에서 오히려 타인의 창작성을 훼손시킨다면, 이는 정말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일이다. 일반 미술계의 관행을 학습해야 한다. 오늘날 ‘민화 열기’가 뜨거우면서도 일반 미술계에서 외면받는 이유는 바로 ‘타인 그림의 차용’에 있다. 본인의 순수한 창작이 아니라면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할 수 없다. 남의 그림을 베껴 놓고 어떻게 내 그림이라고 당당하게 전시장으로 들고나올 수 있을까. 이른바 민화가 일반 미술계에서도 환영받고 또 국제무대에서도 주목받으려면 모사화 중심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사는 초보자의 훈련과정이나 문화재 보존 측면에서 필요하다. 

‘창작 민화’라는 용어가 서서히 대두되고 있다. 모사 중심의 문제점을 인식한 소수의 민화인들 사이에 나오는 신조어이다. 이를 위해 대학원에 민화 전공 학위과정이 신설되기도 했다. 캠퍼스에서는 표절을 권장 혹은 묵인할 수 없는 일이다. 어떤 형식이나 내용이 되건 본인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 물론 창작의 고통 즉 가시밭길을 맨발로 걷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 고행을 자청한 민화인 아니 ‘화가’ 무리가 있다. 창작성 중심으로 채색 길상화를 제작해 보자는 의지의 결성이다. 인사아트센터에서 개최될 ‘아트 바캉스’(2018.8.24-9.2) 전시에 첫선을 보일 길상화사(吉祥畵社) 소집단의 창작 연구발표이다. 물론 첫걸음이기 때문에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길상화사의 설립 목표 즉 ‘창작 민화’에 대한 의지는 주목할 만하리라.

‘민화 열기’. 이 뜨거운 열기를 어떻게 보듬어 갈 것인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은 ‘환골탈태(換骨奪胎)’이다. 그야말로 혁명적인 발상의 대전환을 추구해야 할 때가 아닌가. 꽃이 떨어져야 열매가 맺는다. 아니, 꽃이 죽어줘야 열매가 맺는다. 이제 ‘민화’ 장례식을 치르고 우리 그림 채색 길상화의 장도를 축복할 때이다. 모처럼 맞은 ‘열기’를 그냥 보낼 수야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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