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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창원조각비엔날레의 <아마란스>

윤범모

접근금지. 미술관에 가면 으레 만나게 되는 표지판. 손대지 마시오. 작품 앞에서 거룩하게 서 있는 말. 손대지 마시오. 물론 작품 보존의 차원에서 접근금지와 같은 표지판은 필요하다. 하지만 미술작품마다 접근금지라는 표지판이 꼭 있어야 할까. 아니, 이런 말은 어떨까. 미술작품과 함께 놀기. 접근금지가 아니라 미술작품 위에서 즐기기. 유어예(遊於藝). 공자님 말씀을 나름대로 해석하여, 예술과 함께 놀자, 미술작품을 데리고 놀자. 이런 놀이마당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바로 창원 용지공원, 2018 창원조각비엔날레 ‘불각(不刻)의 균형’(9.4-10.14) 현장이다. 국내외 작가의 순수 조형물도 설치되었지만, 주요 작품은 놀이 개념의 기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시민은 작품 위에서, 의자처럼 앉아 쉴 수 있고, 누워 독서할 수 있고, 미끄럼 탈 수 있고, 한마디로 놀 수 있다. 즐기는 작품. 바로 유어예 마당이다. 이 마당의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는 작품은 안종연의 <아마란스>이다. 높이와 폭이 12m 정도의 대작. 한 송이 꽃이 우뚝 솟아 호화찬란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안종연, 아마란스, 12×12×10m, 컬러 스테인레스 메쉬, 미디어 캔버스, 미디어 파고라


<아마란스>는 24개의 원형 스테인리스로 커다란 원형 터널 형식의 구조이다. 그 속에 둥그런 길을 만들어 관객의 출입을 환영하고 있다. 마치 꽃 대궐 안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바닥은 실제의 꽃밭이고 천정 부분은 LED 장치에 의한 하늘 꽃밭을 이루고 있다. 꽃 대궐은 용궁이다. 원형 장치는 일종의 물방울 형태, 파문(波紋)이다. 물결의 겹이다. 물속에서 피어오른 꽃, 바로 아마란스. 아마란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꽃으로 영원히 시들지 않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작품 안에 들어가 작품을 즐길 수 있는 구조, 바로 <아마란스>의 특징이다. 작품의 조형성 위에 기능성을 두어 용지공원의 상징적 작품으로 부상될 것 같다.

<아마란스>의 하이라이트는 상층부의 기다란 꽃대궁이다. 횃불 같은 곡면은 화려한 색깔의 변화로 눈길을 끈다. 움직이는 만화경이라 할까. 변화무쌍한 디자인은 밤하늘을 찬란하게 수놓는다. 곡면 동영상은 20분 정도의 발걸음을 묶어둔다. 디자인은 컴퓨터 작동에 의해 얼마든지 변화를 줄 수 있다. 이런 장치는 물론 LED 기술을 빌린 것이다. 독일 Carl Stahl 회사가 개발한 X-Tend와 X-LED 기술에 의한 것이다. 국내 최초로 도입한 신기술이다. 야간의 <아마란스>는 공원의 조명등 역할을 하면서, 명멸(明滅)하는 총천연색은 썰렁한 도시에 생명력을 자아낼 것이다. 생성과 소멸의 명멸. LED는 세포 알갱이처럼 보여 생명을 상징한다. 만화경. 하기야 우리네 인생은 만화경과 같아 화려한 것 같지만 끝없는 명멸의 반복이기도 하다. 꽃이 피고 지고, <아마란스>는 일견 꽃 한 송이 같지만 상징적 코드를 읽어내게 한다.

유어예 마당은 <아마란스> 이외 재미작가 조숙진의 <삶의 색채>도 있다. 화사한 색채의 드럼통, 5단의 35개, 시민은 드럼통 위에 올라가 놀 수 있고, 안에 들어가 쉴 수 있다. 관객참여형 조형물이다. 윤영석의 <심장 유희>는 심장 형태의 설치작품이다. 잔디마당에 설치되어 작품 안에서 놀 수 있다. 경사진 부분에서는 미끄럼을 탈 수 있다. 이 작품은 창원 출신 김종영 작가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불각(不刻)’의 미학을 강조했던 조각가, 이번 문신의 ‘균형’과 함께 ‘불각의 균형’이라는 제목을 얻게 한 모태이기도 하다. 요절한 작가 구본주의 <비스킷 나눠 먹기>는 두 인물이 입을 벌려 기다란 비스킷을 먹는 모습의 두상이다. 비스킷 부분이 기다란 목판으로 이루어져 벤치 역할을 한다.

작품과 함께 놀기. 접근금지라는 엄숙한 경고문을 폐기하고 미술품 위에서 즐기기. 창원조각비엔날레의 새로운 시도는 우리 미술계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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