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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아르헨티나의 김윤신미술관 개관 10주년

윤범모

지구의 반대쪽. 흔히 그렇게 불러왔다. 아르헨티나 같은 남미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정확하게 12시간의 시차, 게다가 계절조차 정반대여서 서울이 겨울이라면 아르헨티나는 여름이다. 지구의 반대. 그런 곳에서 코리안이 살고 있다면, 아니 그 지역에서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빛나는 활동을 하고 있다면, 따듯한 눈길을 줄 일이다. 그것도 예술 활동이라면,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김윤신미술관 전시전경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은 G20 회의 관계로 아르헨티나를 방문했다. 그때 현지의 교민들과 모임이 있었고, 눈길을 끄는 사진 한 장을 남겼다. 대통령 부부 옆의 한 인물, 바로 김윤신 미술가이다. 김윤신. 80대의 노령이면서 현역작가. 그것도 문화적 정서가 사뭇 다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작가는 왜 외진 곳에서 정착했을까. 김윤신은 ‘인연 따라’ 아르헨티나를 여행하게 되었다. 목재 등 미술 재료에 매력을 느낀 작가는 ‘작품 욕심’ 때문에 서울의 교수직도 버리고 외지 생활에 들어갔다. 고립 생활은 창작의 열정으로 모아졌다. 전기톱으로 거친 목재를 다듬으면서 개성적인 조각작품을 만들었다. 바로 영성(靈性)의 결정체였다. 전업 여성 작가로서 얻은 성과였다. 이런 예술적 성과를 현지의 미술관이나 전문가들은 인정해 주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전시공간을 마련했다. 이름하여 ‘김윤신미술관’, 대단한 일이지 않을 수 없다. 남의 나라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열 수 있다니! 2008년부터 미술관은 지역사회에 예술적 향기를 나누어 주었다. 2년마다 한 번씩 개최되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정부 주관 ‘미술관의 밤’ 행사의 대상 미술관으로 선정되어 명성을 높이고 있다. 작가는 신작으로 새로운 관객을 맞이했다. 그러는 동안 10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근래 김윤신미술관은 개관 10주년 기념행사를 멋지게 치렀다. 하객들은 ‘악전고투의 현장’에서 홀로 우뚝 선 작가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현지의 한국문화원은 ‘김윤신 전시실’을 마련하면서 응원을 보냈다. 작가의 뒤에 있는 김란 관장을 잊을 수 없다. 원래 서울에서 사제 지간으로 만났다가 우연히, 아니 필연적으로, 아르헨티나에서 재회한 이후 한 가족이 되었기 때문이다. 미술관 일은 김란 관장이 맡아 운영하고, 김윤신 작가는 작업에만 열중하는 구도이다. 또 그들 뒤에 고석림 무용평론가 같은 든든한 후원자도 있다. 공보관 시절의 고석림은 작가와 처음 만나 작가의 인생행로에 깊게 개입하게 되었다. 전시 개최에 힘을 보탰고, 특히 멕시코에서는 오닉스 석조작업을 주선하기도 했다. 그래서 미술관은 다른 한편으로 미담의 산실이 되기도 한다. 지난가을 나는 현지에서 이런 모습을 확인하고 감동 받은바 적지 않았다.



김윤신미술관 전시전경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코리안과 그 후예들. 근래 ‘코리안 디아스포라’ 혹은 ‘세계 한민족 미술 축제’ 같은 전시 기획에 참여하면서 나는 ‘세계’를 다시 볼 기회를 얻었다. 그동안 우리는 국제교류라 하여 외국의 유명 작가와 작품을 국내로 들여오는 것에 급급하기도 했다. 진정한 의미의 ‘교류’는 대등한 위치에서 왕래하는 것이리라. 이른바 구미 중심 미술품의 국내 소개 수준에서 머물러 있는 현실을 반성하게 한다. 언제 한국미술을 전 세계로 보내 우리의 국격을 높일 것인가. 이에 나는 해외 거주 코리안 예술가들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래서 주장한 것이 ‘문화 영토’였다. 세계지도 위의 국경선보다 이제 문화예술활동의 실질적 역할을 주목해야 하는 시대이다. 한류라는 현상을 직시해야 한다. 다만 한류의 주체를 대중문화에서 순수예술분야로 확대해야 한다. 이에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코리안 예술가를 위한 체계적이고도 실질적인 장치가 절실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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