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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이보경, 전시에 대한 학적인 연구로부터

김준기

이른바 지역미술관이라는 틀은 종사자에게 이중의 과제를 부여한다. 어느 지역이든 이러한 과제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지방공무원으로서 한국의 지역미술관 종사자가 안고있는 특수한 상황이라는 것이 있다. 이보경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연구팀장은 프랑스 유학시절부터 귀국 후 미술관 코디네이터, 협력큐레이터, 학예연구사 등을 거치면서 전시는 물론이고, 교육과 소장품 수집, 미술관 행정 등의 다양한 업무 영역을 두루 섭렵한 베테랑이다. 그는 미술관 종사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탄탄한 현장 경력을 바탕으로 부분과 전체, 시작과 끝의 일머리를 잡을 줄 아는 큐레이터다. 특히 대전과 포항이라는 지방미술관 학예연구직으로서 뮤지움의 보편성을 확장하면서 지역적 특수성을 반영하는 과제를 슬기롭게 풀어나가고 있다.



이보경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연구팀장


이보경은 전시형식에 민감한 큐레이터다. 그는 프랑스에서 조형예술학을 전공했는데, 세분화하면 전시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셈이다. 그것은 뮤제오그래피를 넘어서 엑스포그래피에 가깝다. 한때 논쟁의 주제가 되기도 했던 창작자로서의 큐레이터 정체성에 무게를 둔 그는, 새로운 형식의 전시가 곧 새로운 내용의 전시가 되는 방식을 추구하곤 했다. 큐레이터로서 이보경 정신의 근간은 ‘전시는 형식 그 자체로서 메시지이며 의제가 될 수 있는 발화이자 사유로서, 우선 존재할 수 있는 동시대의 예술형식이자 예술실천’이라는 데 있다. 이러한 생각은 공립미술관 큐레이터로서의 처신과 관계를 맺으면서 나름의 균형점을 찾아가고 있다. 그는 이것을 ‘제안자로서 큐레이터’로 규정한다. 예술이라는 특정 언어를 모두의 언어로 통·번역하는 사람으로서, 그는 ‘예술가와 대중, 작품과 세상’ 사이의 제안자로서 공무원 학예연구사와 현대미술 큐레이터 정체성을 동시에 갖춘 전문가를 지향한다.

이러한 지향은 그의 유학시절 경험에 바탕을 둔다. 그는 프랑스 파리와 근교, 호텔, 상점(서점, 비누 가게, 안경원, 옷 가게), 세탁소, 역사박물관과 갤러리 등에서 전시를 기획하면서 장소, 작품, 관람객 등에 관한 실질적인 고민과 내용을 정비해가며 “전시란 무엇인지”에 관해 스스로 묻고 답하던 실천적 과정을 거치며 전시유형에 대해 고민하면서 석·박사 논문을 썼다. 『예술을 전시하는 예술, 스펙따악뙤흐의 발명』(박사), 『현대미술기획전시: 장소, 관계자, 쟁점』(DEA), 『기존의 전시장 밖의 전시』(석사) 등 그의 학위논문들은 전시를 기획하며 실천 현장을 객관화하고(석사), 현대미술기획전시에 관계하는 주요 요건을 바라보고(DEA), 예술가-전시기획자와 전시기획자-예술가, 두 집단 사이에서 발생하는 ‘작품 같은 전시’와 ‘전시 같은 작품’ 결과물의 외형을 연구하는(박사) 것이었다.

‘예술은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전제의 가능성과 가치를 믿는 그는, 예술의 지위와 역할을 체계적으로 인지한 큐레이터다. 미술박물관 큐레이터에게 각별하게 필요한 예술의 효능에 대한 정확한 인지와 뚜렷한 가치지향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하지만 모든 이가 가진 덕목은 아니다. 예술에 대한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한 조형예술학 전공자의 장점을 십분 살려내는 것이 큐레이터 이보경의 확고한 가치이자 방향이다. 그는 공립미술관 큐레이터로 자신의 소명으로 공공의 가치를 생산하는 데 주목한다. 나아가 그는 생태·환경·사회 등의 영역에 걸친 전지구적 위기를 인식하고, 그 해법을 찾는 공부에 집중한다. 브뤼노 라투르의 ‘행위자연결망이론(actors network theory)’에 기반을 두고, 인간과 자연을 나누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극복하고 인간과 비인간, 자연과 인공 등의 분절을 넘어서는 사유와 실천 과제를 찾는 것을 과제로 삼고 있다.

학예연구팀장이라는 자리는 그를 전시 연구와 기획 중심에서 박물관학 연구와 행정 쪽으로 옮겨가게 만든다. ‘큰 미술관은 시스템이 일을 하고, 작은 미술관은 사람이 일을 한다’는 말이 있다. 그는 포항시립미술관 제2관 건립을 준비하면서, 예술경영·미술관경영 관점이 아닌 미술관 학예행정 또는 미술관행정 차원으로 고민을 확장했다. 물론, 전시학에 대한 그의 공부는 멈추지 않는다. 전시의 개념, 논리, 주제 전개와 완성도 등의 잣대 이외에 전시장 공간의 균형, 긴장, 맥락, 리듬, 운율 등에 관한 비평적 접근을 공론화 하는 일도 그가 풀어낼 과제 중 하나이다. 연구와 실행을 겸하면서 현장의 큐레이터로서 큐레이터 이보경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 이보경(1974- ) 파리8대학 조형예술학 석사, 이미지 예술과 현대미술학 박사 준비과정, 미학·예술학 박사. 전후 프랑스미술과 전시」(프랑스문화예술학회, 2015),「현대미술 전시기획자의 역할과 명칭」(유럽문화예술학회, 2012) 등 논문 발표. ‘한국근현대미술: 봄이 와 있었다’(포항시립미술관, 2021), ‘프로젝트대전 2014 : 더 브레인’(대전시립미술관, 2014), ‘인터로컬 2013 : 일상의 정치’(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터, 2013) 등 전시 기획. 현재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연구팀장(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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