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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페인트공의 아들, LA의 아트거물 되다 ‘더 브로드’를 설립한 일라이 브로드

이영란

일라이 & 에디스 브로드 부부 ⓒThe Broad


연재에 앞서
슈퍼리치들의 투자항목에 예술품이 오른지는 이미 오래다. 근래 들어서는 젊은 부호라든가, 전문가집단까지도 미술품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전세계 미술계로부터 주목받고 있는 파워컬렉터는 누구인지, 그들은 어떤 비전과 컨셉 하에 어떤 작품을 수집하는지 차례로 살펴본다.


미국은 거대한 땅덩어리만큼이나 아트컬렉터의 숫자도 엄청나다. 그러나 일라이 브로드만큼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지닌 슈퍼컬렉터는 흔치 않다. 그는 아메리칸 드림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미 서부지역을 대표하는 억만장자로, 2,000점에 달하는 현대미술품을 대중과 공유하기 위해 LA 도심에 ‘더 브로드(The BROAD)’라는 최신의 멋쟁이 미술관을 오픈한 일라이 브로드는 사실 가난한 페인트공의 아들이었다. 1933년 뉴욕에서 리투아니아계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도장공, 어머니는 양재사였다. 
여섯 살 때 디트로이트로 이주한 그는 미시간주립대 회계학과를 우등으로 졸업했다. 대학 시절엔 집집을 돌며 여성구두며 쓰레기분쇄기를 팔았다. 하지만 워낙 명석해 공인회계사(CPA)시험을 최연소로 합격했고, 곧이어 에디스 로손과 결혼했다. 
결혼 후 낮에는 회계사로, 밤에는 대학강사로 뛸 정도로 극성맞았던 브로드는 1957년 아내의 사촌 형부와 손잡고 주택분양사업에 뛰어들었다. 처가로부터 지원받은 2만 5,000달러로 코프먼&브로드 홈(현 KB홈)을 설립한 그는 디트로이트 외곽으로 젊은 부부들이 몰려드는 것에 주목했다. 그리곤 당시로선 획기적인 ‘지하실이 없는 규격화된 주택’을 지어 아주 싼 값에 분양했다. 대성공이었다.  
그는 또 불황기를 대비해 현금자산 확보가 용이한 생명보험회사를 5,200만 달러에 인수했고, 이를 퇴직연금 전문의 선아메리카로 재구축해 돌풍을 일으켰다. 그리곤 1999년 미국 최대의 보험사인 AIG에 180억 달러를 받고 매각했다. 이처럼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꿰뚫었던 브로드는 포춘의 ‘세계 500대 기업’에 2개 기업을 올려놓으며 성공한 사업가가 됐다. 그리곤 2000년대부턴 자선사업가로 맹활약 중이다. 
지금은 아트넷 선정 ‘세계의 톱10 컬렉터’에 들며 미술시장을 쥐락펴락하지만 젊은 시절 그는 예술에 대해 깜깜절벽이었다. 브로드의 아내는 남편 사업이 궤도에 오르자 화랑을 찾기 시작했다. 집안 장식을 위한 그림들이 눈에 들어왔다. “ 갤러리에서 100달러짜리 앤디 워홀의 <캠벨수프>를 봤어요. 왠지 끌려 사고 싶었는데 그 걸 샀다간 외출금지령이 내려질 것 같아 꾹 참았죠.” 당시 브로드는 워홀의 팝아트를 신통찮게 생각했다. 깐깐한 회계사이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브로드 컬렉션에는 워홀의 <캠벨수프 캔> 2점을 포함해, ‘워홀표 팝아트’가 총 28점에 이른다.  
브로드가 미술에 눈 뜨게 된 것은 한 저명한 인사와 교류해, 그의 저택을 방문하면서부터다. 집안 곳곳에 그와 꼭 어울리는 작품들이 걸려 있고 대화의 상당 부분을 문화예술에 할애하는 것을 보고 ‘진정한 부자가 되려면 좋은 차와 좋은 집만으론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 미술품이야말로 감상의 즐거움과 함께, 훗날 큰 자산이 된다는 점도 알았다. 
이후 브로드 부부는 1970년 피카소의 리도그래피(석판화)를 시작으로, 미술품을 하나둘 수집했다. 초기엔 마티스, 호안 미로, 헨리 무어 등 안전한(?) 작품을 선택했다. 그러나 한번 발동이 걸리자 가속이 붙었다. 남과 다른 길을 가기 좋아하며, 비합리(Unreasonable)를 추구하는 ‘자기주도적 성격’이 발동한 것이다. 아직은 저평가된 작가의 작품이라든가 독특한 작품을 집중적으로 사들이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뉴욕의 거리화가 장-미셸 바스키아의 경우가 그렇다. 자유로운 영혼의 작가에게 부부는 각별한 관심을 가졌고 모두 13점을 작가가 살아있던 1983-86년에 매입했다. 지금의 바스키아 그림이 수십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것과는 천양지차였던 때다. 
무려 122점에 달하는 신디 셔먼 작품도 브로드 컬렉션의 골계에 해당된다. 브로드는 셔먼의 초기대표작 <Untitled-Film Still> 시리즈 중 13점을 1982년 한꺼번에 사들였다. 지금처럼 신디 셔먼이 월드스타가 되기 전이었으니, 누가 뭐래도 ‘최고의 선택’이었음에 틀림없다. 요즘 이 시리즈는 부르는 게 값이다. 이후로도 브로드는 셔먼이 새 시리즈를 발표하기가 무섭게 매입했고, 개인 컬렉터로는 가장 많은 작품을 수집했다.
‘미국의 생존작가 중 작품값이 가장 비싼 작가’인 재스퍼 존스 작품은 대표작 <국기>를 비롯해 총 34점을 컬렉션했고, 요셉 보이스(독일)의 작품도 573점을 매입했다. 에드 루샤(45점), 로이 리히텐슈타인(34점), 크리스토퍼 울(20점), 로버트 테리언(18점), 안젤름 키퍼(16점), 마이크 켈리(15점), 조지 콘도(12점)의 작품도 주목할만하다.
물론 ‘효율에 철두철미한 냉혈 비즈니스맨’답게, 유명작가의 블루칩도 다수 매입했다. 앤디 워홀의 대표작인 <자화상>, <재클린 >, <엘비스>를 사들였고 논란을 몰고 다니는 제프 쿤스(34점)와 데미안 허스트(14점) 작품도 컬렉션했다. 안드레아 거스키(20점)와 토마스 스투르스(7점)의 사진도 포함했다. 사이 톰블리(22점), 존 발데사리(40점), 윌리엄 켄트리지(8점), 네오 라우흐(8점), 스털링 루비(3점) 컬렉션도 눈에 띈다. 아시아 작가 중에는 무라카미 다카시(11점)와 쿠사마 야요이(1점)가 포함됐다. 아쉽게도 한국작가는 아직(?) 없다. 


브로드뮤지엄(The Broad)


LA가 ‘제2의 고향’인 브로드는 40년에 걸쳐 이뤄진 방대한 컬렉션을 대중에게 보란 듯 선보이고 뉴욕 런던에 비해 예술에 있어 늘 한 수 뒤지는 LA를 ‘세계적인 아트캐피탈’로 만들기 위해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프랑크 게리의 걸작으로 꼽히는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과 MOCA(현대미술관)가 자리 잡은 LA 최고요지인 그랜드 애비뉴에 모두의 입을 ‘쩍’ 벌어지게 할 뮤지엄을 지어 일대를 ‘문화의 거리’로 부각시키겠다는 복안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작년 9월, 자신의 이름을 딴 ‘더 브로드(The BROAD)’가 문을 열었다. 총 3억 달러를 들여 눈부시게 하얀 초대형 미술관을 만든 것이다. 뱀껍질 같은 특이한 파사드의 미술관은 뉴욕 건축그룹 ‘Diller scofidio+renfro’가 디자인했는데 12만ft²(3,370평)에 이르는 내부엔 기둥이 하나도 없다.
초대관장인 조앤 헤일러는 2,000점의 소장품 중 250점을 선별해 개관전을 꾸몄다. 앤디 워홀, 로버트 라우센버그, 요셉 보이스, 제프 쿤스 등 60여 작가가 망라됐다. 이에 대해 ‘워싱턴 포스트’의 필립 케니코트는 “가장 큰 문제는 작품이 너무 많다는 데 있다. 개중에는 ‘최고급 쓰레기’(High-end trash)도 적지 않다. 물론 대중들은 열광할 것이다. 다행히 사이 톰블리, 존 발데사리, 에드 루샤 작품이 맞물려져 매혹적이었다”고 평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름 그 자체가 ‘브랜드’가 된 유명작가의 하이라이트 작품들이 너무 즐비해(이렇다 할 큐레이팅은 생략한 채) 맥락 없이 펼쳐놓았다는 느낌은 지우기 어렵다. 하지만 대단한 작품들이 ‘그득그득’한 뮤지엄을 둘러본 관람객의 반응은 좋은 편이다. 제프 쿤스의 유명한 풍선 강아지와 튤립 조각이 단연 인기다. 워홀, 바스키아의 회화, 무라카미 다카시의 가로 25m의 대작도 호응이 높다. 


제프 쿤스, Tulips, mirror-polished stainless steel with transparent color coating, 203.2×457.2×520.7cm ⓒThe Broad


브로드뮤지엄은 관람료가 없다. 단, 혼잡을 막기 위해 온라인(thebroad.org)예약을 권하고 있다. 개관 첫해 20만 명(100일간)이 관람했고, 올해 목표는 80만 명이다. 
지난해 일라이 브로드는 포브스 선정 ‘미국 갑부 순위’ 65위에 올랐다. 자산규모는 약 65억 달러로 “75%를 살아생전에 기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부자로 죽는 것이야말로 가장 수치스런 일”이라며 교육, 의학, 예술 분야에 총 35억 달러를 기부했다. 과연 ‘기부왕’답다. 그런데 지원기관에 엄정한 사전, 사후검증을 요구해 “너무 빡빡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그는 “기부도 일종의 투자다. 효과가 없다면 투자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이렇듯 독단적이고 계산적이지만 문화예술에 대한 비전과 신념만큼은 대단히 열려있어 꼭 미워할 수만은 없다. 자신이 구입해 재단에 등록한 작품들은 ‘이미 내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라며 마음을 깨끗이 비운 지 오래다. 1984년부터 ‘대여 도서관(Lending Library)’라는 제도 아래, 고가 작품들을 세계 각국의 대학과 미술관에 빌려주고 있는 게 그 증거다. 지난 30년간 500개 기관에 8,000점을 대여했다니 ‘통 큰 나눔’이 아닐 수 없다. 
웹사이트와 ‘앱’을 놀라우리만치 풍성하고 완벽하게 꾸며놓아, 일반의 이해를 돕는 것도 돋보인다. 이는 자신들이 수집해온 예술품을 대중과 공유함으로써 더욱 많은 이들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더 나은 미래가 만들어지길 바라는 소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때론 오만하고 독선적이지만 이 같은 슈퍼 컬렉터는 많을수록 좋지 않을까.


이영란 이화여대 신문방송학 학사, 세종대 언론문화대학원 석사, 홍익대 미술대학원 석사. 전 헤럴드경제 편집국 부국장(미술전문 선임기자) 역임. 이화여대, 수원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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