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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남다른 예술적 ‘촉’지닌 할리우드 거물, 데이비드 게펜 그의 또다른 이름은 ‘미국 최고의 컬렉터’

이영란

음반 및 영화 제작자인 데이비드 게펜

게펜이 소장했던 윌렘 데 쿠닝 작 <woman_3>을 코언에게 넘겼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음반 및 뮤지컬, 영화제작자 데이비드 게펜(David GEFFEN). 엔터테인먼트업계 최고 거물인 그는 여러 면의 얼굴을 지닌 사람이다. 뛰어난 프로듀서이자 제작자, 수많은 스캔들을 뿌려온 동성애자, 요트와 저택에 미술품까지 집요하게 수집해온 컬렉터, 그리고 곳곳에 거액을 쾌척하는 자선사업가까지….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면모를 지닌 그를 한두 개 단어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다. 지극히 복잡다단하고, 캐면 캘수록 또 다른 얼굴이 드러나는 이가 바로 게펜이다.

게펜은 글로벌 엔터테인먼트업계 인사 중 가장 많은 부(富)를 축적했다. 현재 자산은 67억 달러(『포브스』 집계). 조지 루카스나 스티븐 스필버그도 그에 못 미친다. 동시에 게펜은 무려 23억 달러(한화 2조 7,600억 원)에 이르는 미술품을 보유하고 있는 수집가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해 7월 자산컨설팅업체 Wealth-X의 자료를 인용해 “데이비드 게펜의 아트컬렉션 총액은 약 23억 달러로 세계 1위”라고 보도했다. 컬렉션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마크 로스코, 잭슨 폴락, 윌렘 데 쿠닝 등 작품값이 비싼 작가들의 주요작을 보유하고 있어 총액에서 수위를 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게펜은 자신의 수집품이 알려지는 걸 꺼리는 편이어서, 대중에 공개된 작품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게펜은 대단히 비범한 예술적 더듬이를 지녔지만 ‘인정사정 없는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루고야 마는 집념의 사업가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의 어린 시절과 청년기는 별반 순탄치 못했다. 뒤죽박죽이었다. 1943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유태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게펜은 내성적인 어린이였다. 아버지는 군인이었고, 어머니는 브루클린에서 작은 옷가게를 운영했다. 아들은 성적 정체성에 혼란을 일으키며 엉뚱한 행동을 거듭해 주위에서 쑤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격하게 대응하며 아들을 감싸 안았다. 동성애에 관해 대단히 엄혹했던 시절이었으니 참으로 당찬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고교 졸업 후 게펜은 휴스턴의 텍사스대에 들어갔으나 곧바로 중퇴했고, 브루클린대로 옮겼으나 역시 그만뒀다. 난독증이 심해 제도권 교육에 적응할 수 없었던 것. 그리곤 LA로 이주해 작은 영화사를 거쳐 연예기획사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우편실 소속이었던 그는 UCLA를 졸업한 것으로 서류를 위조했다가 들통이나 쫓겨났고, 개인사업에 뛰어들었다. 1970년 게펜은 ‘애슐림(Asylum) 레코드’를 창업했다. ‘정신병원’ 내지는 ‘피난처’라는 뜻의 엉뚱한 이름을 내건 구멍가게였지만, 뛰어난 싱어송라이터들을 발탁해 주옥같은 곡을 만들게 하며 연달아 빅히트를 쳤다. 우리에게도 친근한 이글스, 린다 론스타드, 닐 영, 존 레논, 너바나 같은 걸출한 가수들의 음반이 잇따라 출시됐다. 명(名) 프로듀서다운 기획이었다. 
조니 미첼, 올리비아 뉴튼 존, 셰어, 에어로스미스 등 게펜의 조련에 의해 스타덤에 올랐다. 1970-90년대에는 음반이 날개돋친 듯 팔리던 시대였고, 자연히 엄청난 돈이 굴러들어왔다. 결국엔 그 자신이 설립한 애슐림과 게펜레코드를 워너브라더스와 MCA에 넘기며 억만장자가 됐다.

게펜은 될성부를 재목을 알아보는 남다른 ‘촉’을 지닌 데다, 뜰만한 음악을 누구보다 잘 집어내는 명민한 제작자였다. 나중엔 영화도 제작했고, 뮤지컬 <드림걸스>, <캣츠>를 브로드웨이에 올리기도 했다. 1994년에는 스티븐 스필버그, 제프리 카젠버그와 손잡고 드림웍스를 설립해 10여 년간 여러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다. 성공한 사업가 대열에 진입하자 게펜은 미술품 수집에 열과 성을 쏟았다. 워낙 부침이 심하고, 외줄타기에 가까운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종사하면서 그는 미술에서 안식과 영감을 얻곤 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끝없이 변화하고 수많은 질문을 던지게 하는 현대미술이 대단히 매혹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한가지 주목할만한 사실은 게펜의 컬렉션에는 작가의 대표작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어정쩡한 작품 여러 점 대신, 단 한 점이라도 가장 뛰어난 작품을 산다는 원칙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호크니, Pool with Two Figures, 1971, 데이비드 게펜 소장


스티븐 스필버그, 제프리 카젠버그, 데이비드 게펜, 드림웍스 창시자 ⓒDreamWorks



아울러 ‘전후(戰後) 미국현대미술’로 컬렉션을 집중한 것도 돋보이는 대목이다. 물론 외국작가 작품도 일부 있지만 철저하게 컨셉을 유지해 “컬렉션이 계통 있게 잘 이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LA 현대미술관(MOCA)의 폴 슈미트 큐레이터는 “개인이 보유한 전후 미국미술 컬렉션 중 게펜의 컬렉션만한 것은 없다”고 평했다.
게펜의 이같은 컬렉션이 이뤄지기까지 그 배후에는 래리 가고시안(가고시안화랑 대표)이 있었다. 게펜은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같은 유태인인 가고시안의 조언을 늘 경청했다. 두 살 아래의 ‘절친’을 만나기 위해 뉴욕발 비행기에 수시로 오르며, 그가 추천하는 전시와 경매를 부지런히 훑고 다녔던 것이다. 가고시안은 미국을 대표하는 아트딜러로, 굵직굵직한 거래를 도맡고 있어 실탄이 풍부한 게펜으로썬 중요한 작품을 손에 넣을 기회가 많았다.

그는 미국의 아티스트 중에서도 잭슨 폴락, 재스퍼 존스, 윌렘 데 쿠닝의 다이나믹하면서도 참신한 조형세계를 가장 좋아했다. 아르메니아 출신의 아쉴 고르키의 리드미컬한 추상표현주의도 사랑했다. 예술적 자아가 강하고, 감수성이 남달랐던 사람이었기에 변화무쌍하고 역동적인 현대미술과 궁합이 썩 잘 맞았던 것이다. 게펜은 액션페인팅의 양대산맥인 ‘폴락과 데 쿠닝’의 격정적인 회화를 무엇보다 선호해 대표작을 중심으로 여러 점 수집했다. 또 재스퍼 존스의 경우도 <Weeping Women> 등 괄목할만한 작품을 다수 보유 중이다.

데 쿠닝의 <Woman III> 수집에는 흥미로운 스토리가 얽혀 있다. 이 작품의 거래는 1994년 비엔나공항의 활주로 한켠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마치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맞교환이 공항서 펼쳐졌는데, 데 쿠닝 작품을 보유 중이던 테헤란뮤지엄이 반출에 난색을 보였기 때문이다. 거래를 맡았던 취리히 아트딜러는 이란 측이 탐낼만한 16세기 진귀한 페르시아 회화를 건네고, 데 쿠닝 작품을 간신히 받아내 게펜에게 넘겼다. 이렇게 어렵사리 <Woman III>를 손에 넣은 게펜은 지난 2006년 헤지펀드 매니저인 스티브 코헨에게 1억 3,750만 달러에 인도했다. 이 거래에도 가고시안이 개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데 쿠닝의 <Woman>시리즈는 모두 6점인데 <Woman III>는 유일하게 개인이 소장 중(나머지 5점은 미술관 보유)인 작품이라 가격이 많이 뛰었다는 후문이다.

같은 무렵 게펜은 잭슨 폴락의 <No.5>도 1억 4,000만달러에 멕시코 금융재벌 데이비드 마르티네즈에게 넘겼다. 이는 전후 현대미술 거래가 중 최고가를 경신한 것이어서 화제를 모았다. 게다가 게펜은 재스퍼 존스와 데 쿠닝의 또 다른 작품도 처분해 “억만장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냐?”라는 의혹이 이어졌다. 이에 뉴욕타임즈의 캐롤 보겔은 “게펜이 아끼던 그림 4점을 판 것은 당시 매물로 나온 유력신문 LA타임즈 입찰금을 조성하기 위해서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게펜은 데이비드 호크니, 로버트 메이플소프 같은 일련의 동성애 작가들의 그림과 사진도 수집했다. 그 자신은 한때 가수 셰어와 연인관계이기도 했으나,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확실히 깨달은 뒤론 게이 파트너들과 함께 해왔다. 2007년에는 공식적으로 커밍아웃도 했고, 그 이후 앳된 동성연인과 종종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거액의 정치헌금을 내며 후원한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초청 만찬 참석차 2009년 백악관을 찾았을 때도 게펜은 41살 연하의 꽃미남(?) 연인을 동반해 눈길을 끌었다. 또한 대학 풋볼선수와의 염문 등 ‘미국 내 가장 돈 많은 싱글남(男)’답게 각종 스캔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자신의 핏줄이라곤 조카밖에 없는 이 외로운 남자의 ‘요트 사랑’ 또한 대단하다. 객실이 82개나 되는 길이 138m의 초호화 요트 ‘선 라이즈’를 비롯해 115m짜리 ‘펠로루스’ 등을 보유 중이다. 또 맨해튼과 LA 말리부 등지에 어마어마한 저택을 갖고 있다. 최근 들어 게펜은 사회사업가로 활약 중이다. UCLA의대에 3억 달러를 지원했고, 작년에는 뉴욕 링컨센터의 ‘애버리 피셔홀’ 개보수에 써달라며 1억 달러를 쾌척했다. 이에 링컨센터는 홀을 ‘데이비드 게펜홀’로 개명했다.(피셔 家에는 1,500만 달러가 전달됐다는 후문이다) “탐욕이 지나치다”는 비판도 있지만 게펜의 주변엔 늘 유명인사들이 즐비하다. 조지 루카스, 톰 행크스, 오프라 윈프리 등이 그들로, 게펜 때문에 아트컬렉션에 입문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게펜은 PBS의 ‘American Masters’에 출연해 “내겐 특별한 재능이 없다. 오직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걸 알아챘을 뿐이다.”라고 했다. 엔터테인먼트업계 거물의 말은 지극히 간단명료했다. 그런데 그것은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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