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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촌티 경멸하던 냉혹한 명품사냥꾼 베르나르 아르노, 경영에 예술 접목하며 ‘부드러운 양’이 되다

이영란


 오늘날 지구촌 최고의 ‘명품왕국’의 출발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비롯됐다. 1970년 뉴욕 JKF공항. 프랑스 유명 공과대학인 에콜 폴리테크니크의 졸업반이던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 1949- )는 호텔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아탔다. 미국 땅을 처음 밟은 그에게 기사는 “프랑스인이세요?”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답하며 아르노는 “프랑스에 가본 적 있으셔요?”라고 질문했다. 기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프랑스 대통령이 누군진 아세요?”라고 묻자 기사는 “몰라요. 하지만 크리스챤 디올은 알죠”라고 답했다.
 그 순간 아르노의 머리에 ‘번쩍’하고 번개가 쳤다. ‘디올(Dior)’같은 브랜드야말로 국제무대에서 여러 말 필요 없이 통할 수 있는 자산이요, 명품을 보유한다면 큰 사업을 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았던 이 대화는 훗날 그에게 ‘결정적 전기’가 됐다. 아르노는 14년 뒤 디올이 그의 앞에 왔을 때, 온 힘을 다 해 수중에 넣었다. 그리고 5년 뒤 LVMH(루이비통 모엣 헤네시)까지 집어삼켰다. ‘명품의 황제’, ‘캐시미어를 두른 늑대’는 그렇게 탄생했다.
 아르노는 1949년 프랑스의 북부 소도시 루베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총명했던 그는 수학과 과학을 잘해 공대에 들어갔고, 졸업 후 아버지의 건설회사에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이어 부동산개발업에 뛰어들어 좋은 실적을 거뒀다. 1979년에는 아버지 회사의 대표가 됐다.


좌) 베르나르 아르노
우) 엘스워스 켈리, 컬러 패널 ⓒ엘스워스 켈리 ⓒFondation Louis Vuitton Marc Domage

 그러나 1981년 프랑스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며 기업을 옥죄자 미국으로 건너가 고급주택 분양사업을 시작했다. 미국에서도 성공 가도를 달리던 즈음 ‘디올의 모기업인 부삭이 부도 직전에 처해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서둘러 귀국하며 본보기용으로 멋지게 지은 집을 미국 부호에게 팔았다. 헌데 새 주인은 열쇠를 건네받자마자 ‘거실 위치를 바꾸겠다’며 멀쩡한 집을 뜯기 시작했다. 이를 본 아르노는 “프랑스인들은 아이디어는 많은데 늘 머뭇거린다. 미국인들은 바로 착수한다”는 사실을 아로새겼다. 이후 프랑스의 창의적 아이디어에 미국의 스피디한 경영을 접목했고, 미국식 M&A도 공격적으로 전개했다.
 스무 살 때부터 열망했던 디올을 1984년 인수한 아르노는 디올이 속한 부삭그룹의 직물 및 기저귀 사업을 매각하고, 디올과 봉마르셰백화점에 집중했다. 직원도 대거 해고했다. 그 결과 디올은 2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이에 고무된 아르노는 ‘이제는 럭셔리산업이 대세’라며 건설회사를 매각하고 ‘거함’ LVMH의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처음 14%였던 지분을 43.5%까지 늘렸다. 그리곤 혈투에 가까운 소송 끝에 1989년 LVMH의 주인이 됐다. 140년이 넘은 명품기업 루이비통이 39세 애송이 사업가의 손에 들어간 것이다.
 LVMH를 인수한 후 아르노는 기업을 재정비함과 동시에, 지방시, 겐조, 셀린느, 펜디, 불가리, 쇼메, 태그호이어, 샤토디켐 등 알짜 브랜드를 잇달아 인수했다. 그리곤 구태의연한 가족경영을 쓸어내고, 현대식 경영을 도입했다. 그 결과 LVMH 그룹은 럭셔리업계에서 대적할 자가 없다. 패션, 시계, 보석, 화장품, 유통 등 6개 분야에서 70개 명품이 운집한 LVMH의 지난해 매출은 376억 유로(약 48조 원)로 아르노가 인수하던 당시보다 25배 증가했다. 개인재산은 629억 달러(70조 원)로 세계 부자 순위 11위, 프랑스 부자 순위 1위다.
 아르노는 요즘은 세계적인 파워컬렉터로 꼽히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미술에 열정이 별반 없었다. 피아노 연주를 훨씬 즐겼다. 처음 그가 수집한 그림은 후기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유화 <차링 크로스 다리>이다. 런던 템스 강을 그린 이 풍경화는 1980년 경매에 나왔는데 응찰자가 없어 아르노는 낮은 추정가에 살 수 있었다. 이후 그는 피카소, 베르나르 뷔페의 작품을 사들여 집과 사무실에 걸고 음미했다.
 아르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때 모네를 아주 괜찮은 가격에 낙찰받고 들뜬 마음으로 집에 가져와 오랫동안 잘 감상했다. 그런데 아마도 루이비통재단 미술관장 수잔 파제는 나의 모네를 썩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고 밝혔다. ‘편안한 그림’을 좋아하던 초보 시절을 토로한 것.
 그러던 그가 본격적으로 현대미술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은 1997년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를 만나면서부터다. 1등 명품인 루이비통이 ‘높은 명성에 품질은 뛰어나지만 지루함이 문제’라고 판단한 그는 메종 전체에, 또 제품에 새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미국의 신예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를 아트디렉터로 기용했다. 젊고 반항적인 감각을 세련되게 버무려내는데 일가견이 있던 이 천재는 100년 넘게 신성불가침 영역이었던 ‘고동색 LV 모노그램’을 확 뒤집어놓았다. 스티븐 스트라우스의 낙서 같은 손글씨를 모노그램에 과감히 덧입혔는가 하면, 무라카미 다카시로 하여금 루이비통의 모든 라인을 마음껏 갖고 놀게 했다. 아티스트와의 협업으로 몰라보게 젊고 산뜻해진 루이비통은 매출이 순식간에 5배나 뛰었다.
 이 과정을 목도한 아르노 회장은 ‘명품경영의 키(Key)는 현대미술에 있다’며 아트컬렉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마크 로스코, 알베르토 자코메티, 앤디 워홀을 필두로 아그네스 마틴, 장미쉘 바스키아, 게르하르트 리히터, 아니쉬 카푸어, 로즈마리 트로켈, 우고 론디노네 작품이 컬렉션 리스트에 올랐다. 특히 마크 로스코의 추상화는 그가 가장 아끼는 것으로, 홍보용 인물사진을 이 그림 앞에서 찍었다.


올라퍼 엘리아슨, 인사이드 더 호라이즌 ⓒ이완 반

 아르노 회장은 앤디 워홀의 작품을 10점 가까이 수집했다. 워홀의 초기 붉은 자화상과 일명 ‘폭탄 머리’로 불리는 후기 자화상 등 주요작을 보유 중이다. 엘스워스 켈리의 작품은 5점 넘게 수집했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회화는 사슴을 그린 1963년 작품과 바다를 그린 1969년 작품, 화려한 색 띠의 디지털 작품 <Strip>(2011)까지 시기별로 사들였다. 루이비통과 협업한 미국의 악동 작가 리처드 프린스, 일본의 원로작가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도 수집했고, 아프리카 및 아시아 작가 작품도 여럿 컬렉션했다.
 아르노 회장은 자신의 컬렉션과는 별도로, 기업컬렉션도 적극적으로 독려했다. 특히 지난 2006년 루이비통재단을 설립한 후에는 대형 설치작품과 미디어아트를 집중적으로 수집했다. 영국의 듀오 작가 길버트와 조지의 가로 10m, 8m짜리 회화 3점이 연결된 <트립틱>,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대형 사진, 크리스 버든의 설치작품, 더그 에이컨의 텍스트 작업이 이에 해당한다.
 루이비통은 1970, 80년대부터 많은 작가와 공동작업을 해왔다. 1980년대에 프랑스 조각가 세자르 발다치니, 미국 작가 솔르윗과 협업했다. 또 아티스트와 건축가, 사진가와 스타를 묶는 다양한 프로젝트도 펼쳤다. 그러나 아르노 회장이 2001년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을 방문하고, 그 놀라운 위용에 반해 뮤지엄 건립을 결심하면서 보다 본격적인 예술사업의 막이 올랐다. 건축가 프랑크 게리가 아르노에게 ‘돛단배 드로잉’을 제시한 지 13년 만인 2014년 10월, 마침내 파리 불로뉴숲에 유리 돛단배 형상의 루이비통미술관이 탄생했다.
 루이비통재단은 미술관 개관에 앞서 올라퍼 엘리아슨, 사라모리스, 아드리안 빌라 로자스에게 장소특정적 작품을 주문했다. 그 중 ‘동굴’로 불리는 지하 공간을 장식한 엘리아슨의 <인사이드 더 호라이즌>은 가장 압도적이다. 스테인리스 스틸과 유리, 거울, LED를 이용해 물과 거울, 빛이 끝없이 서로를 비추도록 한 매혹적인 작업이다. 또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모나 하툼, 베르트랑 라비에의 작품도 관람객과 만나고 있다.
 파리의 허파로 불리는 불로뉴숲에 루이비통이 아름다운 미술관을 건립하며 파리의 예술지도는 크게 바뀌었다. 3년 반 사이에 350만 명이 다녀갈 정도로 호응도 좋다. 특히 건축은 계속 화제다. 그러나 ‘지극히 루이비통답다’는 느낌 또한 지우기 어렵다. 사치품 브랜드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 컬렉션이 안전한 길을 택한 것은 2% 아쉬운 대목이다. 일평생 촌스러움을 경멸하고, 최고의 세련미를 추구해온 ‘명품황제’다운 컬렉션이다.
 토요일 아침, 별다른 약속이 없으면 아르노 회장은 루이비통미술관을 찾는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어머나 회장님, 미술관이 너무 멋져요”라고 찬사를 터뜨릴 때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지구상에서 가장 우아한 슈퍼컬렉터임이 틀림없다. 자신의 꿈을, 판타지를 그답게 마음껏 실현했으니 여한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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