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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민족해방운동 100주년 맞이 지사화가열전

최열

최후의 은일지사 윤용구, 저항의 상징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배척당한 화파가 국망시대 지사화가 계열이다. 은일지사, 망명객, 의병, 독립군으로 구성된 이들은 일제의 감시 아래 천년을 지속해 온 기호체계인 사군자 회화로 시대정신의 향기를 퍼뜨렸던 상징주의 화파이다. 2019년 3.1민족해방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서울아트가이드』는 지사화가열전을 연재한다.

석촌(石邨) 윤용구(尹用求, 1853-1939)는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일에 일본 왕이 발표한 <조선귀족령>에 따라 천황의 이름으로 하사한 남작(男爵) 작위에 대하여 “완민(頑民)으로 불사이군(不事二君)”이라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귀족작위자 76명 가운데 거부자는 8명이었다. 윤용구와 더불어 김석진(金奭鎭, 1843-1910), 민영달(閔泳達, 1859-1921 이후), 유길준(兪吉濬, 1856-1914), 조경호(趙慶鎬, 1839-?), 조정구(趙鼎九, 1862-1926), 한규설(韓圭卨, 1848-1930), 홍순형(洪淳馨, 1858-1910 이후) 모두 8명이 눈부신 그 이름이다.

윤용구는 고종황제의 측근으로 근왕 세력의 중심이었지만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장위산 아래 은거를 시작했다. 이후 황제가 위기에 처하자 출사했지만 강제퇴위와 함께 물러나 이후 은일지사로 서예와 사군자 그리고 거문고에 의탁하다가 생애를 마감했다. 맑고 깨끗하며 올곧은 생애에 걸맞게도 그의 명성은 매우 드높아 ‘대가현인(大家賢人) 윤용구’라고 높여 불리고 있었다.




윤용구, <추속죽(帚束竹), 월영죽엽(月影竹葉)>, <도수죽(倒垂竹), 춘뢰일야(春雷一夜)>, <괴석, 송지우인(宋之愚人)>, <반지죽(斑指竹) 노대생손(老大生孫)>, 종이, 각각 131×32cm, 최열 소장



그런 까닭에 숱한 이들이 그 현인의 글씨와 그림을 받기 위해 끝없이 줄을 섰다.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가 써 준 글씨로 새긴 현판이 전국 곳곳에 걸려 있는데 다만 그 글씨가 현인의 것이어서가 아니다. 그의 글씨는 칼의 노래다. 꺾이는 부분이 힘에 넘치고 그 끝 각이 진 것이 도검(刀劍)에 방불하다.

또한 그의 그림은 괴석과 난초, 대나무 세 가지가 주를 이룬다. 괴석 그림은 몽인(夢人) 정학교(丁學敎, 1832-1914)의 뒤를 잇되 윤용구만의 개성을 지닌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난초 그림은 탄력에 넘치는 유연함으로 빛나는데 무엇보다도 포물선을 그리며 땅 아래로 쏟아지는 도수난(倒垂蘭) 그리고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허공을 헤매이는 노근란(露根蘭)이 휘황하다. 대나무 그림은 윤용구 회화세계에서 절정의 분야일 뿐만 아니라 묵죽을 포함한 사군자의 역사에 있어 새로운 세계 그 자체였다. 거꾸로 땅을 향해 가지와 잎을 뻗는 형상을 하고서 물구나무선 세상을 은유하는 도수죽(倒垂竹)의 통렬하고도 슬픈 모습만으로도 사군자의 새로운 세계를 열고 있지만 저 포물선을 그리는 포선죽(抛線竹)도 신선한 아름다움을 뿜어내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대나무 잎을 빗자루처럼 한 묶음으로 그린 추속죽(帚束竹)이나 대나무 줄기의 마디마디를 둥그런 반지처럼 그린 반지죽(斑指竹)은 사군자의 변화를 넘어서는 실험정신에서 꽃피우는 전위의 세계다. 이처럼 그의 회화세계는 이전에도 없고 이후에도 없는 독보의 형상을 실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망시대를 고스란히 상징하는 최고의 회화세계에 도달했다는 점에서 윤용구는 20세기 전반기가 배출한 최대의 상징주의 화가라 하겠다.

그러나 사후 윤용구는 회화사에서 완전히 삭제당했다. 사군자 분야의 몰락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지만 문제는 잔존하는 사군자 화가들 사이에서조차 배척당한 데 있을 것이다. 전후 전제주의 군사독재정권에 저항은커녕 순응과 협력을 일삼은 사군자계의 배반 다시 말해 절개와 지조의 상징을 부정해 버린 초라한 초상이 낳은 비극이란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국망시대를 대상으로 삼는 역사서술이라면 여타의 모든 미술보다도 가장 앞서 바로 이 지사화가 계보 또는 상징주의 화파가 당대 미술계의 주류가 돼야 했다. 하지만 모든 근현대미술 통사에서 윤용구는 물론, 이 저항의 계보가 삭제된 이래 일백 년이 지난 오늘에도 복권되지 못하고 있다. 3.1민족해방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2019년이야말로 저 저항의 상징주의 화파가 불사조처럼 되살아나는 신기원이기를 희망한다


- 최열(1956- )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회장(2010-11), 인물미술사학회 회장(2013-14) 역임. <한국미술저작상(1999)> 외 수상. 『한국현대미술운동사』(1990),『미술과 사회』(2010),『 이중섭 평전』(2014) 외 지음. 현재 고려대, 중앙대, 서울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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