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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이회영, 평화와 사랑을 향한 절벽의 화살

최열


이회영, 석란도, 140×37.4, 종이, 1920년 여름, 개인소장


지난 2018년 3월 칸옥션 전시장에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다. 영화 <암살>의 암살단 배후 인물이자 아나키스트인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 1867-1932)의 <석란도> 한 폭이 나온 것이다. 지금껏 국내에 알려진 그의 작품은 모두 5폭인데 이번에 출현한 작품은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것이다. 우선 크기가 가장 크고 또 드물게도 본인이 서명을 직접 한데다 ‘경신지하(庚申之夏)’ 다시 말해 1920년 여름이라는 제작 연도와 그 계절까지 밝혀두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작품의 수준인데 이전의 다섯 점과 비교해 볼 때 가장 단아하면서도 수려하다.

세 번째로는 미술사상 대한제국에서 식민지시대로 이어지는 과정의 저항미술 계보에서 최고의 위치를 점유하는 작품으로써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네 번째로 이 작품은 그 역사상 의미를 따져볼 때 가격을 측량할 수 없는 작품인데 김구(金九, 1875-1949), 안중근(安重根, 1879-1910)의 서예와 비교할 때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희귀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정치, 사회, 문예 모든 면에서 대체 불가능한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은 경매 추정가였다. 기껏 1,500만 원에서 3,000만 원 사이였던 것이다.

국립 기관 담당자에게 이런 사실을 알려주면서 구입을 호소했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냉담 그것이었다. 내년 3월이면 3.1민족해방운동 100주년이다. 하지만 국립 역사관 및 미술관, 박물관 가운데 그 어느 곳도 해방운동 100주년 기념 저항미술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런 판에 이회영 선생의 작품이 출현했다고 해서 관장 이하 담당 학예사들이 눈 하나 꿈쩍이나 하겠는가. 국가의 냉소와 무시 끝에 <석란도>는 한 개인이 2,200만 원에 낙찰을 받았다. 2억도 민망한 데 그 가격이라니,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이회영과 6형제들은 국가를 강탈당하자 침략자에 맞서기 위한 군사인력 육성기관인 신흥무관학교 건립기금으로 가족의 재산 전체를 기부했다. 공동체의 요구에 가장 크게 응답한 지사(志士)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동방 아나키스트 지도자였다. 공동체의 평화만이 아니라 인류의 평화를 향한 그의 꿈은 공동체를 파괴하는 자들을 대상으로 무장투쟁조직 다물단, 흑색공포단을 조직, 경영하는 것으로 실천했으며 66살의 노혁명가는 일제 경찰의 참혹한 고문 끝에 여순감옥에서 생애를 끝내야 했다.

이회영의 <석란도>는 아나키스트의 이상 실현을 위한 투쟁의 보증수표로 널리 사용했는데 그 증거를 감추기 위해 대체로 서명을 하지 않거나 석파(石坡) 이하응(李昰應, 1820-98)의 석란도처럼 보이게 그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하응의 석란과는 근본이 다르다. 절벽에 매달린 그의 난초는 가냘프지만 평화를 향한 질긴 희망이요, 바위는 그 희망을 굳건하게 받쳐주는 사랑의 터전이었다. 그의 작품이 아름다운 까닭은 보는 이의 심장을 향해 날아가는 평화와 사랑의 화실이기 때문이다.


- 최열(1956- )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회장(2010-11), 인물미술사학회 회장(2013-14) 역임. <한국미술저작상(1999)> 외 수상.『한국현대미술운동사』(1990),『미술과 사회』(2010),『이중섭 평전』(2014) 외 지음. 현재 고려대, 중앙대, 서울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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