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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슬기 : 해학 속의 K-(pop)Art

김승덕

이슬기는 항상 깨어있는 작가로 시대의 흐름을 의식하고 자신과 연결된 주변의 환경을 관찰하여 작업으로 끌어낸다. 이를 위해 설치, 조각, 회화, 퍼포먼스, 협업 등 유용한 도구를 거침없이 동원한다.

작가의 초기 작업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2001년에 코르시카 섬에서 며칠간 아프가니스탄의 부르카 복장을 한 여인처럼 의상의 양눈에 뚫어진 작은 구멍에 의존해 거리를 활보하며 생활한 퍼포먼스이다. 여기에 작가 특유의 예술적 터치는 무거운 정치적 이슈에 잔잔한 꽃무늬 패턴으로, 머리부터 전신을 덮은 모습은 연약한 시골 처녀의“아프가니스탄 여인들에게 자유”를 위한 조용한 저항이었다. ‘파업’이란 글씨를 수놓은 플랜카드, 석고 덩어리가 담겨져 들 수 없는, 기능을 상실한 색색의 비닐봉지, 뒤집어진 우산 손잡이에서 흐르는 눈물, 작가의 손을 거치며 비상식적으로 변한 일상 오브제에는 그의 세계를 감지 할 수 있는 단서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이슬기,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 2018, 195×155×1cm,
진주명주, 통영 누비장인과의 협업, 사진 갤러리현대


내가 작가를 만난 것은 2001-2년경 그가 건축가 시몽 드부뱅과 함께 운영하던 대안공간파리(Paris Project Room)에서 였다. 협소한 내부보다 외부가 인파로 더 바글거리며 붐볐던 단칸 전시공간은 작업하는 동료들의 아지트인 동시에 갓 졸업 후 전시기회가 수월히 주어지지 못하는 작가들을 짝지어 소개하는 기획으로 대화와 협업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장소였다. 그 경험을 통해 이슬기는 프랑스 미술계의 이방인이지만 방관자가 아닌 촉매자이자 행동가로서의 모습을 보였다. 이런 인연으로 작가와 단체전에 함께 할 기회가 두 번 있었는데 2005년 프랑스 생테티엔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사적/공적의 집(Domicile:Privé/Public)’전시에서 이슬기는 주제에 걸맞게 빨갛게 물들인 고양이를 전시장에서 활보하도록 풀어놓는 ‘홈 스위트 홈’을 연상시키는 작업을 제안을 했다. 1969년 쿠넬리스는 12마리의 말을 전시장에 내놓았고 2011년 피에르 위그는 실외이긴 했으나 도큐멘타에서 한쪽 다리에 분홍 염색을 한 개를 작품으로 등장시켰다. 2013년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에서도 이 개는 당당히 작품으로서 전시장을 활보했다. 이슬기의 제안서는 세밀한 탐구를 거쳤고 동물 염색의 과정과 동반되는 문제의 해결책, 지키는 이의 인권 비용까지 우리는 작품을 실체화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빨갛게 물들인 고양이가 활보하는 작업은 결국 프로젝트 드로잉으로써 전시 되었다. 난관을 관철하는 것은 나의 몫이었기 때문에 작가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다. 그 후 2007년 오스트리아 빈 쿤스트할레에서 열린 ‘유연성의 금기(Elastic Taboos)’ 전시에서 이슬기는 한국 전래동화에 등장하는 도깨비 방망이를 소리 나는 파피에 마쉐(Papier-Mache) 조각으로 만들어 내는가 하면, 접시 위의 담긴 세례자 요한 머리를 연상시키듯 얼굴 없이 가발로 뒤덮인 머리를 담은 흰 접시가 바닥 위에 설치되어 서서히 돌아가며 그 기괴한 머리카락 줄기를 타고 물방울이 아래로 떨어지는 작업을 선보였다. 흔한 일상의 오브제가 시각적으로 현실에 표현되며 닫힌 생각의 틀을 열어주고 이슬기 만의 진지하면서도 묘한 유머가 단지 미소로 지나치지 못하고 작업 안에 쌓여진 결들을 다시금 들여다보게 한다. 단순하지만 본질에 쉽게 접근하는 그의 작품이 전해주는 여운은 시적이면서도 때로는 무저항의 커다란 힘을 발휘한다.



이슬기 작가, 사진 갤러리현대


2014년 이래 멕시코 오악사카에서 <바구니 프로젝트 W>, 통영에서 <이불 프로젝트 U>를 장인들과 협업해온 이슬기는 이번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개인전 <다마스스 DAMASESE>(2018.11.15-12.23)에서 장인의 누비이불을 캔버스처럼 사용해 한국의 속담에 담긴 해학을 기하학적 패턴으로 풀어 나간다. ‘새 발의 피’, ‘금강산도 식후경’, ‘빛 좋은 개살구’ 등 정감 있는 속담과 밝은 색상의 한국의 오방색은 미니멀한 현대 추상미술과 조화를 이룬다. 물질만능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식이 외면당하고 그러기에 가장 기본이 되는 원론적인 이슈의 정당성을 일상생활에서 제자리로 되돌리고, 디지털 시대에 자리를 잃어가는 장인들의 작업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는 수공업의 귀중함. 굳이 여기에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 1943- )의『 장인(Craftsman)』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슬기 작가는 시대의 흐름을 읽으며 우리 일상에 해학의 여유로움을 가져다주고 숨 가쁘게 뛰는 우리 사회에 무언의 경종을 울린다.

김승덕 / 파리 르콩소르시움미술관 공동디렉터


- 이슬기(1972- ) 선화예고 졸업, 프랑스 파리고등미술학교 E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 수학. 대안공간 파리프로젝트룸 PARIS PROJECT ROOM 공동운영. 광주비엔날레(2014), 라 트리애니얼(팔레 드 도쿄, 2012), 보르도비엔날레(2009), 광주비엔날레(2007)> 등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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