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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이수영, 모든 떠도는 것들을 위하여

박수진

이수영, 서쪽으로 다시 오 백리를 가면, 2010


“나는 떠돈다. 물 원래 금이 그어진 섬에서 낮에 뜬 별을 보며 건널 수 없는 바다로, 그곳으로, 자꾸만 길을 잃으며 항해한다.” 
이수영의 작업은 떠도는 자들과 함께한다. 그 길에서 그들의 어긋난 만남, 실패한 바람, 사연 많은 이야기를 쫓는다. 그리고 어디에도 정주할 수 없는 그들을 위로하는 서사시를 노래한다. 

떠도는 자
솥단지에 엉성한 내비게이션 하나 달고, 그는 중앙아시아의 초원과 사막으로 떠났다. 백 년 전 조선을 떠나 만주로, 다시 위구르로 떠났던 그들의 길을 쫓아 떠났다. <서쪽으로 다시 오 백리를 가면>(2010) 그들은 그토록 찾던 곳을 찾았을까? 아니다. 떠돌다 다시 돌아온 고향은 더 이상 그들의 고향이 아니었다. 그렇게 그들은 고향에 사는 이주자가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여전히 떠도는 자이며 고단한 삶을 이고 길 위에 있다. 
떠도는 자들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자가 된다. 대구 자갈마당(성매매 집결지)은 일제 강점기 대구의 게이샤 유곽으로 시작되었다. 100년 전 그곳에 있다 유령이 된 여인, 그곳에서 태어난 일본인 소년, 이들 모두는 고향의 낯선 자이며 그들에게 고향은 <떠도는 고향>(2016)이다. 이렇게 이수영의 작업은 고향을 잃고 떠도는 자, 역사에서 누락된 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의 행로에 있다.

소리
사막에서는 황색 모래바람이 소리를 내며 분다. 사막 바람에는 그 길을 지났던 수많은 것들의 이루지 못한 바람들이 켜켜이 쌓여 바람 소리를 낸다. 바람은 전생을 기억해 바람 소리를 낸다. 머리 하나에 몸통이 셋인 물고기를 풍경으로 만들어 바람 소리를 맞는다. 강가 바람은 가야금으로 바람 소리를 전한다(<소호강호>(2018)). 허공을 가르는 <활의 목소리>(2014)는 바람의 소리를 닮아 있다. 작가는 물(物)과 우주와 공모하여 홍심(紅心)으로 내리는 활의 목소리를, 신탁의 목소리를 전하고자 한다. 

눈을 가린 물고기(<물고기 샤먼>(2013)), 눈병이 나서 시력을 잃어가는 여인(<전생, 눈병>(2015)) 등 그의 작업에서 더 이상 눈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눈을 대신한 귀는 아주 작은 미물의 소리 하나 놓치지 않으려 한다. 바람 소리에서 담긴 온갖 사연 많은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인다. 이승과 저승을 떠도는 것들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인다. 그는 귀(鬼)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인다. 몽골 남고비 사막 초원에서 바람 속에 누워 육신의 반은 이미 땅으로 돌아간 짐승의 자유로운 사체와 마주할 때(<풍장>(2011)), 그는 죽은 짐승의 영(靈)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 이제 그의 귀는 귀(鬼)가 된다.


이수영, 풍장, 2011


접신
생과 사는 매 순간 존재하지만, 존엄한 삶과 죽음은 무엇인가. 그는 <죽음 항해자>(2011)가 되어 관을 매고 걷고, 몽골의 초원에서는 108배를 하며 구제역으로 산 채로 매장된 돼지들을 위로한다. 스스로 샤먼이 된 작가는 지구에서 살다간 온갖 생명과 물의 정령을 불러내고 접신을 시도한다. 식탁 위에서 만났던 고사리에서 고사리 정령을 불러내 2억 년 전 중생대 사우로스들과의 우정을 떠올리고 인간에게 학대받았던 뭇 생명들을 위로한다(<고사리 접신>(2012)). <장소의 령(靈) 야에가키쵸>(2017)에서는 100년 전 게이샤 령에 접신하여 폭력과 식민의 증언을 듣는다. 

이렇게 이수영의 작업은 귀신, 영토에 귀속되지 않는 자들과 같은 전근대적 타자의 현현들, 경계의 산물들을 통해 근현대의 집단적 폭력들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그의 작업은 우리의 근대와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를 보여주며 전근대적인 것으로 현대성을 뿌리에서 뒤흔든다.



박수진 / 독립큐레이터
curatorpark@naver.com


- 이수영(1967- ) 서울대 조소과 및 뉴욕 시립대 미술대학원 졸업. 개인전 ‘활의 목소리’ 외 5회(서울, 바르셀로나 등), ‘2018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잠시, 신이었던 것들’, ‘타끌 하나의 우주 쑈쑈쑈’ 등 국내외 다수의 기획전, 단체전, 인천아트플랫폼, 국립미술창작스튜디오 고영, 앙가(바르셀로나) 등 국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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