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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이소요, 변형에서 보존으로, 보존에서 돌봄으로

구나연

인류세와 미술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은 지금, 한국에서 이와 관련한 작품 활동으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 중 한명이 이소요이다. 그는 동식물, 인간, 유기체 등과 같은 생물 미디어를 통해 서구 근대의 인본주의가 상정해 놓은 이성적 세계관에서 철저히 대상화되어 온 자연의 역사를 고찰하고, 미술을 통해 이를 비판하며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작업을 수행해 왔다. 2017년에는 ‘식 물도감-시적 증거와 플로라’ 전시를 기획하여 ‘식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숙고를 제안하고, 2019년부터 시작한 <서울에서 풀려나다(Feral in Seoul)> 작업에서는 도시 식물을 탐사하고 아카이빙 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영향력에서 ‘풀려나’자생적으로 발생하는 식물의 활생을 관찰한다.



이소요, <玆山魚譜, 그림없는 자연사: 형태적 종의 개념>, 2020, 설치 세부, 가변크기, 사진 홍철기, 제공 우란문화재단.


그는 생물학과 예술학에 관한 통섭적 연구를 기반으로, 자신이 연구소나 박물관에서 직접 참여해 온 생물 표본의 경험을 통해 예술의 대상이 된 생물 미디어에 관한 심도 깊은 결과물들을 작품과 논문으로 발표해 왔다. 예컨대 그의 2016년 개인전 ‘원형보존(A Dying Art)’과 2020년 ‘우란시선’전에 선보인 <자산어보(玆山魚譜), 그림 없는 자연사: 형태적 종의 개념>은 인체와 생물을 대상으로 한 표본과 예술의 관계에 대해 재고하고, 생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미술의 새로운 접근방식을 제시한다. 그는 <원형보존>에서 자신이 직접 참여하고 실행한 해부학 표본의 과정과 경험의 자료를 통해 과학적 연구 대상에서 문화적/예술적 대상으로 변화한 생물 미디어가 생체에 대한 개념과 감각, 규범과 범주의 재설정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피력한다. 또한 그의 <자산어보, 그림 없는 자연사: 형태적 종의 개념>은 정약전이 쓰고, 이것이 후대 한자로 기록된 18세기의 종에 대한 형태적 분류와 서술을 오늘날의 가시적 표본으로 보여준다. 대상을 직접 보고, 만지고, 체험하여 기록된 자산어보의 종 분류는 유형학을 통한 것으로, 이는 레비-스트로스가 『야생의 사고』에서 지적한 것처럼, 추상적 언어를 사용하여 종에 대한 관심의 차이와 그 분류의 특징이 드러난 역사적 일례로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이소요는 인간에 의한 생명권력(biopower)의 일방성에서 한발짝 떨어져 근대화 이전 한 학자의 눈에 비친 생명과 종의 개념을 가시화한다.

이소요는 작가이자 연구자로서 작업과 더불어 관련 과학과 예술의 관계 설정과 변화를 고찰한 논문을 여럿 발표해왔다. 2017년 논문인 「관리, 돌봄, 배려-예술 속 생물 미디어 사례를 중심으로」에서는 예술과 자연 생산물, 즉 생물 미디어의 분류학적 관계가 인간의 이익에 기초한 생명의 위계를 탈피하는 대안적 영역으로 이동할 것을 강조한다. 이와 관련해 과학과 예술 사이에서 요구되는 생물에 대한 법적 구분의 중요성, 그리고 생물 미디어가 예술의 대상이 될 때 나타나는 여러 문제점과 사례를 지적한다. 예술이 생물을 다루는 것은 단순한 미적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생명에 대한 개념 자체와 긴밀하게 연계하고 있다는 것이 이소요의 작업과 연구가 제시하는 가능성이자 철학이며, 인간이 지구에서 존재하는 여러 생명 사이의 필연적 연결과 공생 속의 한 종임을 반추하게 만든다.



이소요, <원형보존>, 2012, 작업 과정, 가변크기, 제공 The Mütter Museum at The College of Physicians of Philadelphia.


최근 그가 근현대미술사학회에서 발표한 「21세기 해부학 표본-기술매체의 역사적 측면」은 그의 개인전 ‘원형보존’에서 제시됐던 것처럼, 그가 현장에서 연구한 해부학 표본 작업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물의 일부 혹은 전체를 영구 보존하는 생물 표본의 위상 변화와 ‘생체 보존물’의 형태로 빈번히 예술의 현장에 등장하기 시작한 생물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한다. 여기에서 그는 미술 작품에 등장하는 생물 자체 혹은 표본 등이 단순히 서정적의 시각화의 관점으로 변형 되는 것이 아닌, 또 연구의 목적을 소진한 단순한 보존이나 방치의 대상이 아닌, 돌봄(care)의 대상이 될 것을 강조한다.

이처럼 근대적 인간이 자본주의의 모더니티에 의해 가속화된 생물에 대한 능동적 인식을 친족이나 반려와 같은 개념으로 전환하고 있는 현재, 이소요가 작업과 연구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인류세에 대한 각성을 근간으로 한 여러 변화 속에서 미술 혹은 예술이라는 장르가 실천할 수 있는 고유한 가능성이다. 인간과 비인간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견인하는 생물 개념의 탈인간화는 미술이 물질을 매개로 하여 미적 경험을 제공해 온 매체적 본질에 대한 재고이자 통찰인 것이다.


구나연 / 미술비평가
bartlebygu@gmail.com


작가
- 이소요(1976- ) 연세대 심리학과 학사,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예술사, 렌슬리어 공대 인체액침표본에 대한 학제 연구로 박사학위. 보안여관, 백남준아트센터, 서울시립미술관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가. 생물을 시각정보와 예술창작물로 환원해온 문화적 관습에 관심을 갖고, 생명과학-자연사-예술이 공유하는 생태관과 연구방법론을 탐구.


필자
- 구나연(1976- )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학사·석사, 홍익대학교 예술학 전공 박사과정 수료. 저서 『표류의 미술』(2019), 역서 『도쿄베타』(2020) 저술.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 한국 동시대 미술에 대한 비평 활동과 일본 현대미술사에 대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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