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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한국팝의 숙성과 대중소비사회

윤진섭

‘한국팝’의 역사는 1967년으로 그 기원이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앙공보관 전시실에서 열린 ‘청년작가연립전’에서 일련의 오브제 작품들이 등장했다. ‘무’동인의 김영자는 유엔 팔각성냥통을 크게 확대한 <성냥111>을, ‘신전’ 동인인 정강자는 크게 확대한 벌어진 빨간 입술 사이에 이빨을 연상시키는 창틀을 만들고 그 안에 선그라스를 쓴 여자의 두상을 놓은 <키스 미>를, 심선희는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인을 소재로 한 입체작품을 선보여 한국 최초의 팝적 징후를 알렸다. 당시 한국 사회는 ‘바캉스’라는 외래어가 회자될 정도로 여가생활이 강조되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서민은 ‘보릿고개’라는 말이 나돌 만큼 배고픈 민생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김기라, Contemporary still life with Selly Belly Candies, 2009, Oil on canvas, 84×149cm


근본적으로 소비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팝아트(Pop Art)’는 ‘사회를 재는 문화적 척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당대의 사회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흔히 ‘대중가요’라고 부르는 음악의 장르가 서민들의 애환과 생활의 정조(情調)를 담고 있듯이, 미술에서의 ‘팝’은 잘 알려진 대중적 이미지를 통해 사회를 풍자하고 비튼다. 어떤 작가는 복제 이미지를 통해 명화의 원본이 지닌 미적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어떤 작가는 대중적 이미지의 사용을 통해 자본과 달콤한 밀월관계를 즐기는 상업주의를 풍자한다. 나는 2009년에 ‘제3회 인사미술제’의 주제로 ‘한국의 팝아트’를 정하고, 1967년 이후 한국 팝아트의 역사를 정리하는 장문의 글을 쓰는 동시에 일련의 전시를 기획했다.
이 전시에 앞서 2008년에 성남아트센터가 기획한 ‘Pop N Pop’전이 열렸으며, 2011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메이드 인 팝랜드(Made in Popland)’전이 열려 한때 한국의 팝아트는 크게 대중적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이처럼 긴 역사를 지닌 한국의 팝아트건만 웬일인지 그에 걸맞은 이론적 연구 풍토는 제대로 진작되지 못했다. 오늘날 한국의 팝아트가 일부 상업화랑의 아이템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게 된 이면에는 괄목할만한 미술관급 전시가 부재한 데 그 원인이 있다. 전시기획과 연구의 대세를 몰아가지 못하고 때마침 불어 닥친 단색화의 격랑에 표류하게 된 것은 아닌지 차분히 돌아볼 일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정화, 이동기, 김동유, 이동재, 홍경택, 홍지윤, 아트놈, 조정화, 찰스장, 이화백 등등 십 수 명에 이르는 작가들의 개인적인 약진은 한국팝의 정착을 이루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덧붙여 80년대 이후 이미지 시대에 진입한 한국 현대미술의 지형을 분석한 저서를 출판한 기혜경과 문혜진 같은 이론가들의 공로도 기록해야 할 것이다.



이동기, 버블 Bubbles, 2008, Acrylic on linen, 250×400㎝(diptych)


한국의 팝아트가 지향점을 잃고 표류를 하는 이때, 대구미술관이 기획한 ‘팝/콘(Pop/Corn)’전(6.11-9.29)은 더할 나위 없는 원군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지역이라는 난관을 극복하고 최근 몇 년간에 걸쳐 주목할 만한 전시를 계속 쏟아내고 있는 대구미술관의 역량과 위상을 고려하면 향후 이 전시가 한국팝의 정착과 확산에 미칠 영향력이 기대된다. 이 전시는 김기라, 김승현, 김영진, 김채현, 남진우, 노상호, 아트놈, 옥승철, 유의정, 이동기, 임지빈, 찰스장, 한상윤, 275C 등 14명의 작가를 초대하여 현단계 한국팝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 중에서 이동기, 아트놈, 찰스장, 한상윤 등 4명을 제외한 나머지 작가들은 2009년 인사미술제 이후에 등장한 작가들이다.

이 전시는 2000년대 이후 본격적인 대중소비사회에 진입한 한국사회를 겨냥하고 있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대에 진입한 지 약 20여 년이 경과한 현재의 시점에서 한국사회의 변동과 시대적 변화를 특히 소비자본주의에 대한 비평적 틀거리인 팝아트를 통해 살펴보자는 것이다. 이 전시는 팝아트의 입장에서 볼 때 오랜 가뭄 끝의 단비와도 같다. 이 땅의 팝아티스트들이여, 부디 힘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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