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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회화의 본질에 대한 질문

윤진섭

예술에서 표현이란 무엇인가? ‘표현하다’라는 뜻의 영어 단어 ‘Express’는 원래 ‘(포도주를) 짜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Expremĕre’를 어원으로 삼는다. 머리를 쥐어짜야 나오는 예술의 표현은 그처럼 어렵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예술가가 되고자 한 젊은 시절의 꿈을 포기하고 삭막한 삶을 살아간다.



샌정, Untitled, 2019, Oil on Canvas, 116.5×91cm, Coutesy of Choi&Lager Gallery and the Artist


회화에서의 표현은 대략 세 개의 방향으로 구분된다. 극소(極小), 극대(極大), 그리고 중간(中間)이다. 극소는 영어로 ‘미니멀(Minimal)’이고 극대는 ‘맥시멀(Maximal)’, 중간은 ‘미디엄(Medium)’이다. 화가들은 자신의 취향에 따라 시계추처럼 이 극과 극 사이를 오가다 여기다 하는 곳에 발을 멈추고 자기 고유의 작품 스타일을 개발한다. 그래서 세상에는 다양한 작품의 양식들로 넘쳐난다.

화랑가를 거닐다 두 곳의 전시에 눈길이 쏠렸다. 초이앤라거갤러리의 ‘샌정 초대전’(9.24-10.15)과 갤러리현대의 ‘신성희: 연속성의 마무리’(9.24-10.31)전이다. 앞의 분류에 의하면 샌정은 ‘극소’에, 신성희는 ‘극대’에 속한다. 둘 다 추상화지만 성격이 이처럼 판이하다. 예술은 그래서 매력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개성들로 넘쳐나는 활력적인 미술계는 전망이 밝지만, 획일적이며 억압적인 분위기에 젖어있는 미술계는 미래가 밝지 못 하다.

우선 샌정의 경우를 보자. 회색 단색조에 깊이 빠져있는 그는 이번에도 역시 회화의 본질을 묻는 작업을 들고나왔다. 점, 선, 면, 색 등 회화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에 대한 실험은 여전히 그의 관심을 끄는 주제이다. 2017년, 두산아트센터에서 가진 개인전에서는 그림을 보는 방법과 액자를 거는 방식을 둘러싼 기존의 회화적 관례에 대해 의문을 품고 나름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던 그다.

당시 그가 시도한 다양한 방법론 가운데 가장 눈에 띈 것은 벽에 칠한 붓 터치 위에 액자를 씌운 작품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벽화와 액자를 갖춘 회화 사이의 경계에 의문을 품었던 것이다. 그랬던 그가 다시 표현의 문제로 전환한 것은 작년에 누크갤러리에서 가진 개인전에서였다. 그는 선이나 면과 같은 회화의 요소에 주목하게 되었으며, 이번 전시는 이의 연장으로써 회화를 다소 모호한 지점으로 몰아감으로써 극소의 표현을 시도한 것이다.



신성희, 연속성의 마무리(Solution de continuité), 1992, 캔버스에 아크릴과 유채 물감, 162×115cm


이와 반대로 갤러리현대의 고(故) 신성희 전시는 표현을 극대화한 전시로 매우 대조적인 표현술을 보여준 전시였다. 원래 신성희는 프랑스 파리로 떠나기 전인 1970년대에 아주 미니멀한 형태의 추상화를 시도하였다. 마대 위에 가는 세필로 마대의 올을 일일이 그린 단색화 계통의 개념적 회화로 국내 화단에서 입지를 구축한 그가 파리에 정착하면서 다양한 화풍의 변화를 꾀했던 것이다. 80년대의 색채 콜라주를 거쳐 다양한 색 띠를 꼰 후 이를 엮어 화면에 격자형 망을 구축하는 ‘누아주’ 연작에 이르기까지 회화의 색과 아울러 재료의 물성에 관한 실험에 천착해 들어갔다. 이른바 평면과 입체의 사이, 표현과 구조 혹은 회화와 지지체에 관한 문제를 작업을 통해 풀어나가는 가운데 회화의 지평을 확장해 나갔다.

신성희와 샌정은 한 세대를 격한 연령의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다같이 ‘회화란 무엇인가?’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작가들이다. 이들에게서 보이는 공통적인 작가적 태도는 예술에 있어서 기존의 관례에 대한 도전과 실험을 통해 회화의 본질적인 의미를 묻거나(샌정), 회화의 지평을 확장(신성희)한 것으로 수렴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른바 문제형(問題型) 작가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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