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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하인두의 재평가와 한국 색채추상의 미래

윤진섭

역사란 무엇인가? 그것은 단지 과거에 흐른 시간의 퇴적에 불과한 것인가? 설령 물리적으로는 그렇다 할지라도 그 현존성에 주목하고 과거의 퇴적물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숭고한 인간의 정신적 활동이다.
인간은 위기적 상황에 부딪히면 과거를 소환한다. 그럴 때 소환된 과거는 현존을 위한 참조물로서의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그것이 결핍된 것에 대한 보완물이든, 아니면 시대적 요청이든 간에 소환된 과거의 정신적 산물들은 지고의 가치를 지니고 오늘의 관점에서 재해석된다. 하인두(1930-89)는 척박했던 전후 한국 화단에서 전위의 첫 삽을 뜬 작가 중 중심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현대미술가협회의 창립멤버로서 비정형회화(Informel)의 깃발을 올린 한국 전위미술의 선구자였다. 그러나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초반에 보여준 그의 맹렬한 전위적 활동은 이후 오방색에 기반을 둔 색채의 세계에 빠져들면서 상대적으로 약화된 모습을 보였다. 


하인두, 묘환, 1986, Oil on canvas, 91×117cm


그러나 보다 폭넓은 관점에서 볼 때, 전통에 근거한 색채추상에의 관심은 단색화의 확산에 맞먹는 등가적 가치를 지닌 작업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그것이 운동사적 차원에서 전개됐느냐 아니냐의 차이에 불과하다. 단색화는 60년대에 발아해서 70년대의 숙성기를 집단적으로 거쳤기 때문에 확산될 수 있었으나, 색채추상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고독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세력의 범위나 확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색채추상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면면히 이어져 온 것은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이 부분에 대한 분석은 보다 정치한 상론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세한 서술은 다음의 기회로 미루도록 하겠다. 지난 11월 8일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한 출판기념회는 작고 30주년을 맞은 한국 색채추상의 선구자 하인두의 재평가를 위한 첫발과도 같은 행사였다. 미술사가 김경연, 신수경의 저서 『화가 하인두: 한국 추상미술의 큰 자취』(혜화1117, 2019)와 미망인인 한국화가 류민자의 작품세계를 다룬 미술사가 조은정의 『류민자: 한국 여성 미술 작가』(이데아, 2019) 등 두 권이 이번에 동시에 상재됐다.
그보다 약 한 달 앞서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는 하인두 작가의 작고 30주기를 맞아 조촐한 전시가 열렸다.(2019.10.4-10.27)
그의 미망인인 한국화가 류민자의 작품과 함께 전시된 하인두의 작품들은 비록 숫자는 적었지만, 한국의 전통미에 근거한 이 작가의 색채추상의 진수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류민자, 피안의 세계, 2002, Acrylic on canvas, 130.3×162cm


하인두는 전후 최초의 전위집단인 현대미술가협회의 창립 멤버이면서 박서보, 김창렬 등과 함께 앵포르멜 운동을 펼친 1세대 전위작가였다. 그는 많은 문인을 친구로 두었을 만큼 문재(文才)가 뛰어나 생전에 많은 글과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 그는 공초 오상순을 비롯한 문인, 미술인, 연극인, 방송인, 언론인, 연예인들의 집결지였던 전후 명동시대의 산증인이었다. 하인두는 박생광과 함께 70년대를 풍미한 단색화에 맞선, 오방색에 뿌리를 둔 화려한 색채추상의 거목이었다. 최근에 대구미술관에서 박생광 회고전이 열려 한국 채색화의 원조에 대한 응분의 조명이 있었는데, 하인두에 대한 재조명의 기미가 전혀 없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다. 게다가 올해가 작고 30주기가 아닌가. 불과 열 점 남짓 되는 작품으로 작고 30주기를 보내기에는 고인이 남긴 업적에 비해 너무 초라한 대접이 아닌가? 적어도 국립현대미술관 차원에서의 회고전이 이루어져야 마땅한 일이었다. 단색화의 대표작가인 박서보 회고전에 버금가는 회고전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려야 단색과 다색을 둘러싼 거장들의 영향력이 미래의 화단에 미칠 자장(磁場)의 조화와 파급력의 편차가 균형 있게 이루어지리라 생각한다. 문화의 다양성 확보라는 측면에서도 그게 사리에 맞다. 평생을 채색화에 정진해 온 류민자의 근작을 살펴볼 수 있었던 것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민화를 비롯한 전통 채색화에 뿌리를 둔 그의 작품은 화려한 궁중화를 비롯하여 민화, 화조화 등 전통의 현대적 번안물로서 독자적인 창의성이 돋보이는 수작들이 다수 출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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