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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백남준의 테이트모던 회고전이 의미하는 것

윤진섭

백남준, TV Buddha, 1974, Stedelijk Museum, Amsterdam ⓒThe Estate of Nam June PAIK 


예술 분야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긴 인물을 가리켜 우리는 흔히 ‘거장’이라고 부른다. 미술을 비롯하여 영화, 음악, 무용, 건축에서의 명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단, 문학에서만 예외적으로 ‘문호’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 어떤 용어든 간에 대중의 깊은 존경과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다. 
미술의 경우, 진정한 거장은 레퍼토리가 다양한 것이 일반적인 특징이다. 이들은 끊임없는 자기 부정의 정신으로 예술가의 생애 자체가 ‘큰 강(大河)’을 이룬다. 사물과 사건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을 근간으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 나간다. 놀라운 것은 작품의 엄청난 양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장의 대회고전은 전시 자체가 하나의 큰 강이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레퍼토리로 구성돼 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작품들의 행렬을 보고 있노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미술사의 한 부분을 장식하는 주옥같은 편린들이다. 한국 미술을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과연 내세울 만한 세계적인 작가가 없단 말인가? 객관적인 평가를 하자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절대적인 객관이 어디 있는가? 겸재와 추사를 낳은 문화민족이 세계적인 거장을 배출하지 못하란 법이 없다. 문제는 움츠러든 패배의식과 열등감이다. 이를 과감히 극복하자. 우리가 세계적인 지평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대주의와 일제 강점기 때 주입된 열등감으로 인해 몸에 밴 패배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관건이다. SNS는 현대문명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호기이다. 주도면밀한 계획으로 우리의 미술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세계인들과 소통하자. 현명한 사람은 주어진 조건을 활용할 줄 아는 지혜를 지니고 있다. 지금이 그러한 때 아니겠는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기생충>으로 아카데미상 감독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이 시상식장에 있던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을 바라보며 한 헌사의 한 대목이다. 이 어록은 젊은 시절의 봉 감독이 스코세이지 감독의 책에서 읽은 것으로 훗날 선배 감독에게 바친 뜻깊은 오마주가 되었다. 흔히 집단의 예술로 불리는 영화가 그럴진대 근본적으로 개인의 예술인 미술은 어떨까. 미술, 그중에서도 특히 회화나 조각 같은 분야는 대개 개인에 의해 고독하게 이루어진다. 경우에 따라 장르를 초월한 협업이 있긴 하지만, 팀을 이끌어 가는 것은 대체로 작가 혼자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란 의미는 따라서 창작의 주체인 작가의 개성과 독창성이 드러나지 않으면, 그 작품은 생명력이 없다는 말에 다름이 없다. 그리고 창작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 이 말 만큼 치명적인 말도 없다. 나는 얼마나 나의 언어에 충실히 하고 있는가? 영화계의 경사를 바라보며 미술계도 한 번쯤 되돌아볼 때가 아닌가 한다.


HanQ, 기생충-드로잉(부분), 2019, 포스터에 유성마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 무려 4개의 본상을 거머쥐었다. 이로써 BTS와 <기생충>으로 대변되는 한류의 물결이 장차 세계를 휩쓸 조짐이 보인다. 올 초에 한 해에 59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는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에서 백남준(1932-2006) 회고전을 보았다. 전 세계 미술인들로부터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그의 작품 200여 점이 열두 개의 전시실에 분산, 배치된 명실공히 대회고전이다. 백남준은 생전에 카셀 도큐멘타를 비롯하여 1993년의 베네치아비엔날레에서 영예의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바 있다. 세계 미술계의 중심인 뉴욕의 휘트니미술관과 구겐하임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갖는 등 거장의 면모를 보였다. 그러나 그는 생전에 뉴욕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MoMA)에서 회고전을 갖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그의 사후 14년 만에 열린 이번 테이트모던의 회고전이 더욱 돋보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회고전은 향후 백남준의 재평가와 관련, 위상의 변화를 촉발시킬 전망이다. 과연 모마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아카데미상을 지역 축제로 일축한 봉준호 감독의 배짱과 세련된 조크를 상기하자니 한숨이 나온다. 그래, 그렇지. 역시 모마는 지역미술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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