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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맛과 멋

윤진섭

“사실, 많은 사람들은 완전한 것을 인식하기에 이르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부족함을 결코 깨닫지 못한 채, 얼치기 제작을 하다가 세상을 끝마치는 것입니다.”

에커만이 쓴 『괴테와의 대화』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창작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괴테의 이 발언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사실 말이 좋아 작가지 진정으로 위대한 작가는 드물다. 현대미술의 비조(鼻祖)로 일컫는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은 제아무리 뛰어난 거장이라도 걸작으로 꼽을 수 있는 작품은 대략 일곱 점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나머지는 자기 복제거나 한 유형의 다른 버전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리라. 다방면에 높은 수준의 지식과 교양을 갖춘 괴테는 기성화가 뺨칠 정도의 그림 실력을 갖추었으나 이탈리아를 여행한 후에는 그림 그리기를 포기했다. 그는 미술에 쪼갤 시간을 오로지 문학에 전념하여 마침내 독일이 자랑하는 대문호가 되었다.



카라바지오, 과일 바구니를 든 소년, 1594/6, 70×67cm, 로마 보르게스갤러리 소장


나는 H 미술대학 시절에 전위미술을 신봉하며 전통을 낡은 것으로 치부했다. 오직 새롭고 신기한 것, 충격적인 실험미술에 온 관심을 기울였다. 대학 3학년 때부터 당시 유명한 전위그룹 S.T의 회원으로 활동을 한 탓인지 기고만장해 있었다. 1970년대 중반 당시, 조형예술론은 임범재 선생 담당이었다. 그런데 한 학기 수업이 거의 끝날 때가 다 돼 가는데도 수업은 도무지 고전의 위대성에서 벗어날 줄 몰랐다. 칸트미학 전공인 선생은 알차게 고전 중심의 수업을 진행했으나 전위 이론에 목말랐던 나는 도저히 그런 수업을 참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손을 들고 전위미술 중심의 질문을 했다. 아니 질문을 했다기보다는 ‘전위미술’의 당위성에 입각한 일방적 옹호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읽고 주워들은 지식이 총망라되는 가운데 나의 질문과 선생의 답변이 오가는 사이 강의 시간이 다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낯 뜨겁고 민망한 일임에 분명하나 열정에 사로잡혀 있던 나는 그런 부끄러움조차 못 느낄 정도로 당돌했다.

나는 그림 실력이 지독히도 없었는지 군에서 제대한 후 같은 H 대의 회화과 대학원 시험에 두 차례나 낙방했다. 그래서 그다음 해에 미학과에 응시, 단번에 합격하였다. 그리고 대학 시절의 은사 임범재 선생을 지도교수로 퍼포먼스의 미적 체험에 관한 석사 논문을 썼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선생은 현대미술에도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윤진섭, 카라바지오 연구, 2020, 43×31.5cm, 종이에 칼라펜


작품활동과 평론을 한답시고 미술판에서 산지도 그럭저럭 마흔다섯 해가 되었다. 그리고 육십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 젊을 때는 그토록 무시하던 고전의 소중함을 느끼며 산다. 틈날 때마다 세잔, 고흐, 모딜리아니, 마티스 등 거장들의 명화를 모사하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앞으로는 겸재와 추사의 작품도 모사해 볼 참이다. 그러면 동서양의 융합을 이룰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고전의 중요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평론과 전시기획을 하는 한편, 지금도 퍼포먼스를 하는 나로서 중심은 단연 새로움과 전위이다. 그러나 고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균형감각을 일깨워준다. 이제와서야 옛날에 고전의 중요성을 그토록 강조하셨던 스승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내가 그 입장이 돼 틈날 때마다 고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산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 주는 정신의 이 묘미! 옛것을 익히며 새로운 것을 흡수할 때라야 진정한 예술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는 이 복음과도 같은 말씀. 이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 데 무려 반세기의 세월이 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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