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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관훈갤러리에 얽힌 추억

윤진섭

미술인이 인사동에 가면 꼭 들르는 곳이 한 군데 있다. 바로 관훈갤러리다. 지금은 그 성가가 다소 퇴색하긴 했지만, 아직 관훈갤러리의 퇴조를 논하기에는 이르다. 툭툭 던지듯 좋은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엊그제 얼책(facebook)에 소개한 덴마크 작가 예페 하인 전시(2020.12.1-2.4)와 함께 공개 중인 독일 신표현주의의 대가 K.H.회디케(Karl Horst HÖDICKE, 1938- )의 경우가 그렇다. 신라대학 교수를 지낸 임봉규가 독일 유학 시절 그를 사사했다.



관훈갤러리 전경


관훈갤러리는 1979년 8월 15일 인사동 한복판에 문을 열었다. 단아한 크기의 흰색 건물은 일제강점기인 1927년에 지어진 병원 건물로 문화재급이다.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의 권대옥은 입시학원을 설립하여 자수성가한 인물인데, 큰 뜻을 품고 이 건물을 사들여 전관을 갤러리로 만들고 관훈미술관이라 이름을 붙였다. 1990년대 초반 미술관법에 의거 관훈갤러리로 이름을 바꿨다. 관훈미술관이 문을 연 70년대 후반은 인사동에 화랑이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었다.

필자는 2008년에 관훈갤러리 창립 30주년을 맞아, 작고한 부친의 뒤를 이은 2세 경영인 권도형과 함께 개관기념전인 ‘지각과 충동’(2008.8.13-8.26)전을 기획했다. 김병호, 연기백, 박은하, 이이남, 이지현, 김성수, 인효진, 홍지윤 등 젊고 실험적인 작가 27명을 초대한 이 전시는 초창기에 관훈갤러리가 한 역할을 되새김으로써 그 전통과 사명을 잇고자 했다.

관훈갤러리는 실험미술의 산실이었다. 바로 이 점이 주변의 다른 상업화랑과 차별되는 부분이다. 비록 대관화랑이지만 일정부분 당시 부족했던 미술관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개관 초부터 미술사적으로 의미 있는 많은 전시를 기획했다. 후원자의 역할은 ‘에꼴드서울’, ‘로고스와 파토스’, ‘레알리떼 서울’ 등 오늘날 미술사적 의의를 지닌 단체에 그치지 않고, 젊고 유망하나 가난한 작가에게까지 골고루 미쳤다.

미술사적 측면에서 볼 때, 70년대 후반에서 현재에 이르는 40년은 모더니즘과 민중미술 간의 대립을 비롯하여 포스트모더니즘의 물결이 휘몰아친 역동적 시공간이었다. 그 거대한 물결의 한복판을 신자유주의에 편승한 상업주의가 휩쓸고 지나갔다. 관훈갤러리는 그 변화의 물결과 영욕의 세월을 지켜봐 온 산 증인이다. 그뿐만 아니라 작가 주도의 전시기획에서 전문 큐레이터의 기획으로 전환되는 변화도 지켜봤으며, 미술시장의 번창에 의한 상업주의의 대두도 겪었다. 아마도 대관화랑으로서 관훈갤러리가 겪지 않으면 안 됐던 퇴조는 이러한 변화의 와중에서 맞이한 필연적인 운명일 것이다.

관훈갤러리는 미술사적 의의가 있는 역사적인 전시들이 열린 곳으로 유명하다. 80년대 초반, ‘힘전’ 사태가 촉발시킨 민중미술 작가들의 세력의 결집인 ‘삶의 미술’전을 비롯하여 70년대 모더니즘의 저항세력으로 등장한 탈모던 그룹들(Meta-Vox, 난지도, 타라 등)이 모여 기획한 ‘물의 신세대’전, 신세대 미술의 효시가 된 ‘뮤지엄’ 그룹의 창립전과 그 후속세대인 ‘황금사과’ 창립전, ‘바깥미술(대성리)’, ‘현실과 발언’ 창립기념전 등 수많은 기획전과 개인전이 열렸다. 아마도 현재 40세 이상된 작가치고 관훈갤러리와 어떤 형태로든 인연을 맺지않은 작가는 드물 것이다.

필자는 1991년 ‘에꼴드서울’전 기획을 비롯하여 1989년에 ‘뮤지엄’전 서문 집필, 1990년의 ‘황금사과’전 리뷰 집필, 1991년의 ‘메시지와 미디어’전의 공동 기획, 그리고 ‘지각과 충동’전의 기획에 이르기까지 관훈갤러리와 다양한 인연을 맺어왔다. 이러한 인연은 필자가 2000년에 인사동에서 ‘서울국제행위예술제’를 어렵게 기획할 때 강영희 전대표(권도형 대표의 모친)의 후원으로 이어졌으니 세상은 참 따스하고도 아름답다.

80년대 중반, ST그룹의 선배인 성능경과 이건용, ‘비조각’과‘반예술’의 작가 이승택, 그리고 행위예술가 조현재의 개인전이 관훈갤러리에서 열렸다. 이는 설치와 오브제, 그리고 퍼포먼스 등으로 대변되는 현대미술의 실험성과 전위성을 관훈갤러리의 정체성으로 꼽는데 주저치 않게 만드는 상징적인 사례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조현재는 관훈갤러리 마당에 수십 개의 얼음 덩어리를 산처럼 쌓아놓고 불을 지르고 도끼로 깨는 과격한 행위를 펼쳤다. 정치적으로 불안한 당시의 시국을 감안하면 작업의 과격성을 수용한 관훈갤러리의 의식을 높히 사지 않을 수 없다.

관훈갤러리가 긴 동면에서 깨어나 본래 지녔던 높은 이상과 진취적 야성을 회복하기 바란다. 그리하여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이 난국에서 창의적이고 야망도 있으나 어려움에 처해 있는 많은 작가에게 희망의 빛을 선물해 주기 바란다. 관훈이 능히 이 일을 해내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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