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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물방울, 빛이 되어 스러지다

윤진섭

최근 들어 미술인들의 부음(訃音)이 부쩍 늘고 있다. 동양화의 원로인 산정(山丁) 서세옥(1929-2020)을 비롯하여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역임한 원로조각가 최만린(1935-2020),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최종 수상작가인 공성훈(1965-2021) 등 모두 미술계에 뚜렷이 족적을 남긴 미술인들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공성훈은 더 활동할 수 있는 젊은 나이에 지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여기에 덧붙여 우리는 최근 또 한 분의 저명한 미술인을 잃었다. 고(故) 김창열(1929-2021) 화백이 그 주인공이다. 대중에게 ‘물방울 작가’로 유명한 그는 소위 말하는 ‘앵포르멜(비정형)’ 운동의 기수였다. 1957년에 결성된 현대미술가협회(약칭 현대미협)의 창립 회원인 그는 김종휘, 문우식, 박서보, 장성순, 하인두 등과 함께 6.25 전쟁 체험을 바탕으로 추상화 작업에 몰입했다. 그의 회고에 의하면 어느 날 전쟁터에서 목격한 부패한 시체에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비참한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처참하게 일그러진 시신에서 인간의 운명에 대한 고뇌를 통해 처절한 사유가 싹텄으며, 그것은 훗날 물방울로 승화되기에 이른다.

물방울이 처음부터 투명하게 빛났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 그것은 불투명한 색깔이었다. 앵포르멜 말기에 해당하는 1964년 작인 <제례>(캔버스에 유채, 162×130cm)는 점액질처럼 찐득하게 흘러내린 물방울을 표현한 것으로 피고름을 연상시켰다. 1970년에 그리기 시작한 밝고 투명한 물방울의 원형이었다. 

미술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이 차지하는 개념과 위상에는 다소 애매한 부분이 없지 않다. 첫째는 극사실 회화와 관련된 것이다. 70년대 당시 파리에서 활동하던 그의 물방울 그림이 대대적으로 선보인 것은 1976년에 열린 현대화랑 초대전에서였다. 아사천에 그린 밝고 영롱한 물방울들은 사람들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했다. 기가 막힐 정도로 정교해 보이는 물방울들은 그러나 알고 보면 교묘한 시각적 트릭의 결과였다.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은 당시 한창 유행하던 극사실 회화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 요인 가운데 하나이긴 했지만 정작 극사실 회화로 보기에는 난감한 부분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것은 사실적이기보다는 이상적으로 보였다. 

김창열은 물방울을 통해 물방울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는 정신이 도달할 수 있는 어떤 지점에 대한 이상적 상태를 꿈꿨던 것은 아니었을까? 일종의 정신적 수행이나 수신과도 통할 수 있는 그 지점은 한학을 바탕으로 한 유교적 사유의 근간이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이 중후기에 접어들어 한자 쓰기로 이행한 것은 자연스러운 추이처럼 보인다. 

둘째는 단색화와 관련된 내용이다.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을 단색화로 볼 것이냐 하는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은 단색화의 본질과는 다소의 거리가 있다. 이른바 ‘행위, 반복, 촉각’을 요체로 하는 전기 단색화의 특징들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창열이 단색화와 관련이 있다면 오히려 인맥적인 부분일 것이다. 알다시피 그는 앵포르멜 미술 운동의 동료인 박서보, 윤형근, 정창섭, 정상화, 조용익, 윤명로 등등 전기 단색화 작가들과 오랜 친분을 유지했다. 국전에서 국제전으로 보도의 초점과 대중적 관심이 옮겨가던 1960-70년대에 파리비엔날레와 상파울루비엔날레 등등의 국제전을 통해 해외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급기야 미국을 거쳐 파리에 정착하는 삶의 궤적을 거쳤다. 물방울은 오랜 그의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화두였다. 한때 물방울을 둘러싸고 매너리즘의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으나 그는 오히려 인격의 함양을 위한 도구로 삼았다. 

김창열 화백이 작고했다는 소식이 뉴스를 통해 알려지자 얼책(Facebook)에는 그의 죽음을 추모하고 애도하는 많은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수많은 동료, 친지, 제자, 미술인들이 그와 얽힌 미담이나 추억담을 소개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덕과 인품을 갖춘 인물은 죽어도 외롭지 않음을 그의 삶을 통해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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