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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딸깍발이 남산골 샌님과 원고료

윤진섭

대체로 이 땅의 글 쓰는 문사들에겐 금기 비슷한 것이 하나 있다. 돈을 언급하는 일이다. 세상에, 요즘 같은 자본주의 시대에 아직도 그런 사람들이 있단 말인가 할는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필자가 원고 청탁을 받을 때 고료를 묻지 않는다. 아니 묻지 못한다. 그 알량한 선비 근성, 조상 대대로 유전자 속에 깊숙이 각인된 ‘남산골샌님 딸깍발이’ 기질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서울아트가이드 2019년 4월호 《지금, 한국미술의 현장》에 실린 
이선영 미술평론가의 칼럼 “공무원이 책정하는 이 지면의 원고료는?”


일석(一石) 이희승 선생의 명수필 속에 나오는 남산골샌님은 늘 나막신을 신고 다녔기 때문에 ‘딸깍발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마른 땅에 나막신 부딪는 소리가 ‘딸깍딸깍’ 했기 때문이란다. 샌님은 그 시절 벼슬 못 한 선비들이 대개 그랬듯이, 비록 끼니를 걱정할 처지일망정 “청렴개결(淸廉介潔)을 생명으로 삼은 선비로서 재물”을 알아서는 안 되었다. 선비들은 자존심이 유난히 강하고 고지식했으며, 지조가 있었다. 일석 선생은 글에 쓰길 “목이 부러져도 굴하지 않는 기개, 사육신도 이 샌님의 주류요, 삼학사(三學士)도 이 ‘딸깍발이’의 전형”으로서 포은 정몽주 선생이 여기에 속한다고 했다. 어디 그뿐인가.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임진왜란이나 구한말의 의병장들도 바로 이 ‘딸깍발이’ 출신들이다. 이들의 결정적인 성격은 일석 선생이 쓴 글의 다음 대목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나라를 소중화(小中華)로 만든 것은 어줍지 않은 관료들의 죄요, 그들의 허물이 아니었다. 그들은 너무나 강직하였다.”

국위와 왕위 계승조차 중국(명,청)의 승인을 받아야 했던 조선 시대에 그나마 내정의 간섭을 받지 않았던 이면에는 바로 이 꼬장꼬장한 딸깍발이 선비들의 나라를 사랑하는 혼이 깃들어 있었다. 면암 최익현의 도끼 상소로 대변되는 유림의 직언과 직소가 있었기에 그나마 나라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랬던 구한말로부터 백여 년이 훨씬 지났다. 이젠 시대가 바뀌어 한국의 GDP가 세계 9위를 전망하고 있으며, 보도에 의하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G7 국가인 이탈리아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말하자면 장밋빛 전망이 국민의 가슴을 부풀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봐도 이젠 살 만한 나라가 되지 않았나?

나라가 살 만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은 단지 경제력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국민 한 사람이 한 사람이 품위와 존엄을 지키면서 각자의 생업에 자긍심을 갖고 임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이 땅에 존재하는 수많은 관청과 문화재단들은 잡지나 학술지 발간을 비롯하여 각종 회의를 주재한다. 문제는 원고료와 회의 수당(심의, 심사, 자문 등 포함) 이다. 현재 얼책(Facebook)을 비롯한 소셜미디어에는 이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바, 사태가 심각한 형편이나 공론화되지 않고 있으며,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는 극소수이고 대부분은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는 형편이다. 체면 때문에 혹은 구차하게 돈 이야기가 하기 싫어서, 등등 비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화가 치미는 자신을 달랜다. 그러나 사실은 앞서 이야기한 딸깍발이 유전자가 슬며시 발동되며 ‘치사해서’ 문제 제기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선비의 전통을 이은 이 땅의 글쟁이들이 평균적으로 기본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원고료를 받고 있다면 믿겠는가.

극명한 예로는 D시의 한 문화재단의 원고료를 둘러싼 행태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한 미술평론가 이선영 씨의 경우가 있다. 이 짧은 지면에서 상세한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그에게 지급된 고료는 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액수였다. 그렇다면 관에서 주도하는 회의 수당은 어떤가? 경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상식선에 훨씬 못 미치는 비합리적인 액수이다. 특히 참가자들이 회의를 참가하기 위해서는 먼 거리일 경우 보통 하루를 소요하게 되는데, 수당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문제점으로 드러나고 있다. 수당을 정한 규약이나 행정 지침에 문제가 있다면 반드시 고칠 일이다. 빠른 시일안에 현실적인 수준으로 개선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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