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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김재관, 화업 55년의 의미

윤진섭

청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재관_기하학적 추상회화 55년’전(7.1-9.5)은 동 미술관의 개관 5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기획전시다. 그만큼 학예실의 역량과 비중이 무겁게 실렸다. 청주시립미술관은 김재관의 이번 회고전을 위해 서울시립미술관을 비롯하여 부산시립미술관과 전국에 산재한 공·사립미술관들에 소장된 대형 작품들을 빌렸다. 그런 연유로 청주시립미술관의 2, 3층 전시장을 가득 채운 전시작품 중에서 평소에 보기 힘든 희귀 작품들을 감상하는 안복을 누릴 수 있었다.



필자와 김재관 작가


김재관(1947- )은 전후 한국의 현대미술계에서 보기 드문 골수 기하학적 추상작가이다. 그는 이번 전시의 타이틀인 55년이란 연륜에 걸맞게 1967년의 첫 기하학적 추상화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기하학적 추상을 추구해 왔다. 김재관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에 개설된 미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제1호 미술학 박사학위 취득의 영예를 입기도 하였다. 그는 박사 논문마저 기하학적 추상으로 일관한 자신의 화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그리드(Grid)’를 테마로 하였다.

김재관은 일반적으로는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박사 논문 외에도 다수의 학술논문을 비롯하여 작가론, 시론, 전평, 수필 등 수백 편에 달하는 글을 여러 매체에 기고, 이제까지 모두 네 권의 단행본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박사논문을 비롯한 수많은 학술 및 논저 자료들은 평소 김재관이 자신의 작품세계는 물론, 청주를 비롯한 지역 미술의 발전을 위해 얼마나 노력해 왔는가 하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

미술 행정가로서 혹은 전시기획자로서의 면모는 한일 교류전이나 유럽, 러시아와 같은 다양한 국가들과의 교류를 꾀한 사실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그는 일찍이 청주에 쉐마미술관을 설립, 사립미술관장으로서 다양한 전시, 학술, 교육사업을 펼쳐왔다. 이 미술관은 미술을 통해 작가, 교육자, 미술이론가, 미술 행정가로서 자신의 야망과 꿈을 이루기 위한 교두보로 삼았다. 그 정점은 재작년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회장의 취임이었으나, 그는 아쉽게도 그 직무를 계속 수행하지 못하고 일신상의 이유로 사임을 한다. 어느덧 칠십 대 후반에 접어들기 시작한 신체적 한계는 사회봉사와 자신의 화업 사이에서 심리적 갈등을 야기한 요인이 되지 않았나 짐작된다. 올해에 이어 내년부터 꽉 짜여 있는 국내외 전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창작의 열정에 더욱 박차를 가하지 않으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 다는 현실적 계산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한국에는 기하학적 추상이 폭넓게 자리 잡지 못 했다. 특히 그리드에 입각한 논리적, 이성적, 과학적 세계를 회화의 관점에서 평생을 완주한 작가는 드물다. 故 이준(1919-2021), 故 하동철(1942-2006), 故 이승조(1941-90), 서승원(1942- ) 등 손꼽을 정도다. 김재관은 이들과 함께 한국 기하학적 추상의 대표작가로 미술사에 기록될 것이다.

흔히 미국의 미니멀 아트는 그리드에 입각한 논리적, 과학적, 이성적 산물로 간주된다. 솔 르윗, 도널드 저드, 로버트 모리스, 댄 플레빈 등의 미국 미니멀리스트들은 플렉시글래스와 같은 산업재료들을 사용하여 익명적, 몰개성적인 도시의 미감을 표현하고자 했다.

한국현대미술사상 집단적으로 기하학적 미감이 표출된 것은 1963년에 창립된 오리진 그룹에 이르러서이지만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1967년 무렵이었다. 김재관은 1967년에 하종현의 기하학적 추상작품인 <도시계획백서>를 보고 감명을 받아 기하추상풍의 첫 그림을 그렸노라고 술회한 바 있다. 나선형 계단의 건물 내부를 상상해서 그린 문제의 그 작품이 현재 청주시립미술관 전시장에서 전시되고 있다.

화업 55년에 이르는 동안 김재관은 대략 다섯 차례 화풍의 변천을 꾀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원근법으로 표상되는 서양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동양적 세계관에 입각한 정체성 탐구로 요해 된다.

오방색을 비롯하여 음양의 관계, 상극과 조화 등 주역이 보여주는 변화의 세계를 그리드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주체적인 관점에서 문화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김재관의 회화적 도정은 이제 자연의 오묘한 세계에 눈길을 돌림으로써 그윽한 시선의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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