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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후배에게 주는 원로들의 메시지

윤진섭

대전시립미술관에서는 현재 ‘제18회 이동훈미술상 수상작가전’(10.5-12.12)이 열리고 있다. 수상자는 황용엽(1931- ) 원로작가다. 1989년에 조선일보사가 고 이중섭 화백의 화업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이중섭미술상의 첫 수상자이기도 하다. 작가 황용엽은 인간을 테마로 지난 60년간 일관된 세계를 보여주었다.



왼쪽부터) 황용엽, 조평휘 화백


그의 그림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다시피 한 형해화된 인간상은 다양한 상황에서 실존적 고통을 겪는 인간의 고뇌를 상징한다. 작가의 삶 또한 그러하였다. 1931년 평양에서 태어난 황용엽은 1948년 평양미술학교 2기로 입학하였다. 그곳에서 그림을 배우는 동안 해방 후의 사회적 혼란상과 이념적 갈등을 겪었다. 그가 6·25전쟁의 와중에 어머니를 홀로 남겨두고 월남을 하게 된 이면에는 이러한 정신적 갈등이 한몫했다. 그는 남한으로 넘어와 삶의 갖은 신산을 겪다 군에 자진 입대하였으나 부상을 당해 상이군인으로 제대를 하게 된다.

황용엽은 홍익대 미술대학 서양화과에 편입하여 화가의 길을 걸었다. 자연스럽게 전쟁 중에 목도한 인간의 모습이 그림의 소재로 등장하였다. 공산주의의 폭정을 경험한 북한에서의 생활과 전투를 하면서 직접 목도한 인간의 실존적 상황은 그로 하여금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했다. 이것이 바로 60여 년에 이르는 장구한 기간 동안 황용엽이 인간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그리게 된 배경이다. 전업작가로서 평생을 그림에 바쳐온 그는 약 30여 회의 개인전을 열면서 매번 변화를 꾀하고자 노력했다고 술회한다. 이 말은 그만큼 하나의 고정된 스타일에 안주하지 않고 매 시기 연륜에 걸맞은 스타일의 변신을 꾀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황용엽의 그림은 평면적이다. 그의 그림은 말하자면 평면 위에서 벌이는 인간들의 곡예인 셈이다. 이러한 사실은 황용엽의 그림이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구체적인 사건이나 사태의 묘사가 아니라, 인간의 본질에 대한 탐구임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의 그림은 인간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것이 목적은 아니다. 따라서 관객이 그의 그림을 통해 봐야 할 것은 대상이 지닌 미적 측면이 아니라 그 너머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다. 그것을 일러 고독이라고 해도 좋고 실존적 한계상황이라 해도 좋다. 중요한 것은 그의 그림을 보면서 느끼는 관객의 감흥이 심적 상태에 따라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관객이 작품을 감상하면서 느끼는 다양한 해석은 결국 작품의 진폭을 넓히는 일이다. 왜냐하면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볼 때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는 퍼포먼스의 경우에 보듯이 작품의 저변을 넓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황용엽은 전후에 미술대학에서 공부했지만 동년배의 작가들이 비정형(앵포르멜) 회화 운동을 벌여 현대미술의 형성에 깊숙이 관여한 것과 달리,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다. 그의 화풍 또한 거기에 걸맞게 해외의 미술사조와는 무관하게 독자성을 띤다. 비록 구상화풍이긴 하지만 황용엽의 화면이 평면적인 구조를 지닌 이면에는 미적 근대성이 스며든 흔적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박서보로 대변되는, 비정형에서 70년대의 단색화로 이어지는, 소위 평면성이 상징하는 미적 근대성과는 또 다른 맥락이어서 주목된다.

이번 출품작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근래에 들어 황용엽의 화면에서 인간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는 현상은 매우 자연스러워 보인다. 연륜이 깊어갈수록 인간보다는 그 주변을 둘러싼 상황, 그중에서도 특히 자연에 주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인간도 갈수록 기호화, 상징화되고 배경 또한 기하학적인 원소로 환원되는 현상은 황용엽이 대상세계를 하나의 사건으로 바라보지 않고 더 이상 수렴할 수 없는 원소를 향해 나아가는 항해를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끝은 과연 어디가 될 것인가? 황용엽이 세수 아흔한 살에 접어든 사실을 감안하면 인생의 막바지에 기울이는 변신의 모습이야말로 놀라울 뿐이다.

이동훈미술상 운영위원회는 19회 수상자로 한국화 분야의 원로작가 조평휘(1932- )를 선정하였다. 황용엽과 비슷한 연배다. 이 두 분은 화단의 원로로서 지금도 건강한 모습으로 작업에 임하고 있다. 세속적인 성공이나 화려한 명예에 이끌리기보다 한눈을 팔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작품을 위해 구십 평생 외길을 걸어 온 모습은 말이 없어도 그 자체가 후학들을 위한 사표가 된다. 어른이 없는 이 시대에 이 두 분의 겸허한 삶과 예술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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