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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재평가된 미술평론가 방근택의 삶과 비평

윤진섭

지난 11월 11일 오전 11시, 고양시에 있는 중남미문화원에서 미술평론가이자 미술사가인 양은희 박사의 『방근택 평전』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코로나 탓인지 소수의 제한된 내외빈 인사들이 참여하여 고인을 회상했다.



양은희 저, 『방근택 평전』, 헥사곤, 2021


그동안 예술가의 평전은 더러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이중섭 평전』(2014)과 『이상 평전』(2003), 기획자로는 『이원일 평전』(2015)이 있었지만 미술평론가, 그것도 거의 당대에 해당하는 현장비평가를 다룬 평전의 등장은 개화기 이래 처음이 아닌가 한다. 물론 고 김윤식 선생이 쓴 『임화 연구』(1989)가 있지만, 그것은 문학동네의 이야기이고 그 또한 평전이라기보다는 이론적 연구서에 가깝다. 그만큼 그동안 미술계에서 미술평론가에 대한 대접이나 대우는 인색하기 짝이 없었다.

일찍이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는 미술평론가를 가리켜“소꼬리에 붙은 등애”로 묘사한 바 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전혀 불필요한 존재일 수도 있지만, 특유의 톡 쏘는 비판을 통해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금과도 같은 존재라는 뜻이리라.

고 방근택(1929-92) 선생의 기구한 삶이 실로 그러하였다. 비평가로서 범접하기 힘든 카리스마를 풍기던 그가 예리한 필봉을 휘두르며 맹렬히 활약한 시공간은 대략 1950-60년대의 서울, 이 땅에 비정형(앵포르멜) 회화운동이 20대의 작가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때이다. 전후의 궁핍한 상황 속에서 김창열, 박서보, 하인두 등등 ‘현대미술가협회(현대미협)’의 작가들에게 때마침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TIME』이나 『LIFE』는 해외의 미술사조를 알려주는 소중한 매체였다. 한 작가는 일본의 미술잡지 『미즈에』에 나온 프랑스의 미술평론가 미셀 타피에의 글 『또 하나의 미학을 위하여(Une esthétique autre)』를 현대미협의 작가들이 돌려가며 읽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들은 이러한 잡지들을 통해 프랑스의 앵포르멜이나 미국 추상표현주의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 당시 민국일보의 미술담당 기자인 이구열(1932-2020)의 회고에 의하면, 이 무렵 한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미국 추상표현주의 작가들 작품의 도판이 벽에 붙어 있었다고 한다.

굳이 이런 증언이 아니더라도 당시 새로움에 목말라 있던 신세대 전위작가들에게 최신의 서구사조들이 신선하게 다가왔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양은희 박사의 『방근택 평전』이 지닌 미술사적 의의는 기존의 작가 중심의 미술사 서술에서 미술평론가의 관점으로 무게 중심의 추를 옮기는데 필요한 물꼬를 텄다는 데 있다. 칸트의 말을 빌리면 이는 실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이 평전이 지닌 의의가 크다.

인문과학의 학문적 객관성과 엄밀성, 그리고 비평이 지닌 비판적 기능과 현장중심적 기술에 토대를 두어야 할 미술사 서술이 때로는 비합리적이며 주관에 치우칠 우려가 있는 작가들의 기록과 증언에 많은 부분 의존해 온 것이 기존의 관례였다. 약간 비약의 위험을 감수한다면 그것은 미술사가 미술현장의 중심으로 파고들어 진실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를 안개 속에 가둘 우려가 있다. 마치 카프카의 소설 『성』에서 주인공 K가 수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처럼.

한국 현대미술사의 큰 축을 형성하는, 소위 50-60년대의 비정형(앵포르멜) 회화와 70년대의 단색화를 개척하고 구축한 원로 중 극소수가 생존해 있는 현실에서 때로는 그들과 끈끈한 동지적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지만, 지난한 삶의 도정에서 어쩔 수 없이 애증의 모습을 드러내야 했던 미술평론가 방근택의 삶과 업적을 되돌아보는 일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이 책은 민족기록화를 둘러싸고 일부 작가들에 의해 자행된 테러와 반공법 위반으로 3년간 집필 정지를 당해야 했던 미술평론가 방근택의 신산한 삶을 방대한 자료를 통해 예리한 시선으로 추적함은 물론, 작가들과 평론가들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해 보여준다.

내년은 한국현대미술의 형성에 크게 기여를 한 미술평론가 방근택이 작고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나 방근택이란 이름은 어쩌다 미술사 연구자의 문헌에 등장할 뿐 세인들의 뇌리에서 급속히 잊혀지고 있다. 이 책은 연민의 눈으로 잊힌 비평가의 삶과 업적을 끈질기게 추적한다.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성공한 원로작가들에 비해 미술평론가에 대한 대접이 왜 “슬플 정도로 박한 지” 그 이유를 묻고 있다. 다 같이 경청해야 할 대목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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