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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모르면 쓰레기, 알면 예술

윤진섭

퍼포먼스 아트 네트워크 아시아(Pan Asia)는 전시기획자 겸 행위예술가인 문재선이 2008년에 창설한 행위예술 전문 단체다. 올해로 창설 13년을 맞이한 이 단체는 그동안 전위와 실험을 표방하며 다양한 국내외 활동을 펼쳐왔다. 가장 대표적인 행사는 2019년에 광주의 아시아문화전당과 서울의 일민미술관에서 연이어 펼쳐진 국제전이었다.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 태국,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미얀마, 이란 등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온 작가들은 학술세미나는 물론 각종 컨퍼런스, 퍼포먼스 실연 및 다양한 아카이브 전시를 통해 변모하는 세계의 문화지형도 속에서 “아시아의 문화적 정체성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 2021년 12월 9일, 퍼포먼스 아트 네트워크 아시아 행사장 건물 앞에 선 참여작가들. 
왼쪽부터 이경호, 오더(윤진섭), 심홍재, 성백, 문재선, 이혁발, 김백기


물론 이와 같은 질문은 그동안 거의 상투적이리만치 비엔날레를 비롯한 전시 및 학술행사에서 숱하게 제기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퍼포먼스계에서 아직 이 질문이 유효하다면 로즐리 골드버그(Roselee GOLDBERG)라고 하는 국제 퍼포먼스계의 걸출한 인물이 미친 영향 때문이다. 미국 뉴욕에 위치한 퍼포먼스 전문 공간인 ‘키친(The Kitchen)’의 큐레이터를 거쳐 뉴욕대학의 교수로 있는 그녀는 지난 수십 년간 <퍼포먼스 아트>를 비롯한 다수의 저서와 전시 기획을 통해 미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특히 2004년에 설립한 퍼포먼스 전문 비영리기구인 ‘PERFORMA’를 통해 세계적인 행위예술가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를 비롯하여 피에로 만조니, 크리스토와 같은 거장들의 작품을 소개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을 비롯하여 구겐하임미술관 등 여러 유명 미술관에서 다수의 퍼포먼스 행사와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다.

이처럼 수십 년에 걸친 활동을 통해 그녀는 로리 앤더슨을 비롯하여 쉐리 레빈, 로버트 롱고, 신디 셔먼,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다니엘 뷔렌, 쉬린 네사트 등등 세계적인 거장들과 인연을 맺었다.

내가 이 짧은 지면에서 이처럼 장황하게 로즐리 골드버그라고 하는 미국의 퍼포먼스 전문가를 소개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과 권위를 지닌 인물의 역할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일당백’이라는 말이 있듯이 한 사람의 뛰어난 전문가가 백 사람, 천 사람의 몫 이상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2021판아시아에서 성능경의 개막 퍼포먼스 장면
사진제공: 판아시아
(퍼포먼스 아트 네트워크 아시아)


그러나 매우 아쉽게도 아직 미술계에서는 한국인으로서 세계적인 명성과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인물을 찾아보기 어렵다. 작고한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선생은 세계적인 명성은 누렸으나 세계 미술계를 좌우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진 못 했다. 그는 구겐하임미술관과 휘트니미술관에 초대되는 영광을 누렸지만 뉴욕현대미술관에 입성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현재 사후 20년이 가까워오지만 그 꿈은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백인 미술사학자들이 편찬한 미술사 책에서조차 그는 여전히 홀대받고 있는데, 이는 그가 세계미술계에서 이룩한 업적에 비춰볼 때 제대로 된 대접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대중음악계나 영화계가 이룩한 금자탑과도 같은 쾌거들을 지켜보면서 나는 미술계의 미래에 희망을 갖는다. 특히 K-Pop과 관련하여 볼 때 미술계에도 머지않아 훈훈한 훈풍이 부리라고 기대한다. 그러한 훈풍은 집단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개인에 대한 기대에 뿌리를 박고 있다. 개인의 재능과 열정, 그리고 마르지 않는 창의성에 기반을 둔 천재 한 사람의 역량이 능히 만 사람의 몫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전위미술은 소수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그 문화적 파장과 충격은 온 누리를 덮을 만 하다. 난해한 언어로 인해 때로는 대중으로부터 공격받지만 바로 그 점이 전위예술의 매력이기도 하다. 이번 판 아시아 퍼포먼스 행사중에 나는 목포의 한 노인 관객으로부터 마치 선문답과도 같은 충격을 받았다. 전시장 근처에 버려진 한 무더기의 소뼈를 발견하고 그걸 가져다 전시했는데, 지나가던 한 노인이 물었다.

“그게 대체 뭔가요?
“예, 소뼙니다.”

그리고는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잠시 후 노인이 무심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모르면 쓰레긴데.. .”

“알면 예술,” 내가 쾌재를 부르며 속으로 덧붙였다. 
그렇다. 거기에 뒤샹의 묘수와 플럭서스의 놀이정신이 숨어 있다. 그것을 발견하고 실천하는 자들, 그 보물 같은 존재들을 찾아내 키울 의무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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