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35)미술시장의 활황과 상대적 빈곤

윤진섭

얼마 전의 일이다. 코엑스에서 열리고 있는 한 아트페어에 들렀다 보기 드문 광경을 목격했다. 코로나19가 무색하게 출입구에 긴 줄이 늘어서 있었던 것이다. 그 광경을 보자 까마득히 잊었던 옛날 호황기 때가 생각이 났다. 한국은 특이하게도 10년마다 미술시장의 호황이 찾아온다.

아니 이럴 수가! 기다리다 어렵게 들어간 아트페어 현장은 일요일에 끝날이 겹쳐 그런지 발 디딜 틈 없이 관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게 대체 얼마 만인가? 이런 진풍경은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것이다. 미당 서정주 시인의 잘 알려진 싯귀를 빌면,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가 했는데 시장이 슬슬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것이다.

호황의 조짐은 코엑스에서 열린 작년의 화랑미술제에서 감지되기 시작했다. 전대미문의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늘면서 매출이 상승하기 시작한 것이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신흥 구매층으로 부상한 MZ세대가 미술시장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첨단의 기기로 무장한 이 세대는 가공할 정보력으로 빠르게 미술시장을 분석한 후 정확하게 투자대상을 찍는다는 것이다. 이른바 메타버스와 NFT 세대의 등장이다. 게다가 코로나19가 주도한 지리한 팬데믹 상황은 미술계에 뷰잉룸이니, 줌이니 하는 생소한 관람과 토론 형태를 낳았다. 이른바 가상계와 현실계를 넘나드는 이 미증유의 상황은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적응하지 못하면 곧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다.

미술시장의 호황과 관련된 또 하나의 소문은 돈의 흐름과 관련된 것이다. 부동산 투기가 상투 끝에 도달했다는 소문이 들면서 자본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자 급기야 돈이 미술시장으로 몰리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그 소문이 맞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방탄소년단의 RM이 누구 작품을 샀다더라는 소문이 돌면, 그 작가의 작품은 그 자리에서 동이 났다.

미술시장에는 이상한 불문율이 있다. 이른바 빌 게이츠 신드롬이니 엘튼 존 신드롬과 같은 현상들이다. 최근에는 방탄소년단의 RM도 여기에 가세했다. 어쩌다 이들에게 작품이 한 점 팔리면 마치 훈장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그 작가는 미술시장에서 보증수표로 통한다.

어디 그뿐인가? 단색화의 정상급 원로작가들의 작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누군가는 작품을 보지도 않고 전화로 주문을 했다더라는 천박한 소문이 전설처럼 떠돈다.

이 모두는 한국의 미술시장이 얼마나 허약하며 재정 건전성이 위태로운가 하는 점을 방증하는 사례들이다. 그런 분위기의 조성에는 신중치 못한 언론도 한몫을 했지만, 비평기능이 약화된 평단, 작가를 튼실하게 키우지 못한 화랑계, 열심히 노력하지 않고 안이하게 작업을 한 작가 등 모두의 책임이 크다. 현장을 발로 뛰지 않는 엉터리 고객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현 상황은 20년 전에 비해 한 발짝도 진전되지 못한, 한마디로 말해 총체적인 난국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호황이라는 신기루를 보고 그 이면은 살피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20여 년 전, 동아일보 칼럼을 통해 나는 당시 미술시장의 상황을 가리켜 ‘천민자본주의’의 소산이라고 불렀는데, 이를 지금 상황에 적용해도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예쁘장한 그림에 길든 작가들은 지금도 열심히 그림에 화장을 하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달콤한 위로나 예쁜 장식도 필요하지만 예술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는 감상자를 반성케 하는 것이다. 이 점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위대한 예술작품은 수용자의 삶을 변화시킨다. 모든 작가가 다 그럴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시대적인 흐름이나 분위기가 그렇게 기울어서는 안 된다. 

면역체계가 인체를 질병으로부터 보호하듯이, 사회를 지키기 위해서는 예술의 반성적 기능이 활성화돼야 하는 것이다. 내가 누누이 이야기하는 전위미술의 교두보가 구축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작년 초의 화랑미술제 이후, 부산아트페어와 대구아트페어를 거쳐 KIAF에 이르는 동안, 한국의 미술시장은 완전히 회복세로 돌아섰다.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미술시장의 활황이 팬데믹 시기에 찾아왔다는 사실이 매우 역설적이긴 하지만, 이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맞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만큼 위기를 많이 겪었으면 이젠 좀 진중해질 필요가 있다. 부를 축적한 화랑들이나 작가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발휘하여, 물질보다는 정신이 더 고귀하다는 믿음을 갖고 천민자본주의의 유혹을 떨쳐볼 필요가 있다. 여러모로 이 시대는 시험의 시대이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