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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박수근과 『나목』

윤진섭

박수근, 고목과 여인, 1960년대 전반, 캔버스에 유채, 45×38cm, 리움미술관


작년 말부터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전(2021.11.11-3.1)이 막을 내렸다. 이 회고전은 박수근 전시의 결정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작품의 질량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전시구성도 탄탄해서 마치 박수근이 활동하던 시대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모름지기 전시란 달랑 작품만 나열하는 메마른 전시 방식에서 벗어나 인문학적인 향취가 전시장 전체에 스며있어야 성공적이라 할 수 있는데, 거기에는 물론 전시기획자의 세련된 안목과 교양, 전문적인 지식, 실력, 그리고 문화에 대한 전망 등이 뒤따라야 한다.

이번의 박수근 회고전이 지닌 가장 큰 의미라면 무엇보다 자칫 신화에 가려 실체를 보기 어려운 박수근의 진면목을 원작을 비롯한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를 통해 직접 살펴볼 수 있었던 점이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이중섭과 함께 신화화된 대표적인 작가로 손꼽히는 박수근의 예술세계가 신화의 베일을 벗고 ‘있는 그대로’의 투명한 세계로 나아감을 의미한다. 사실 이중섭과 박수근이 70년대에 접어들어 대중적 인기를 끌게 된 이면에는 이 두 작가에 대한 시인이나 소설가를 비롯한 문인들의 꾸준한 노력과 관심이 자리잡고 있다. 이중섭과 시인 구상, 박수근과 소설가 박완서의 등식에서 보듯이, 문학 특유의 서사구조와 언술방식은 이 두 화가의 삶을 미화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는 그들의 삶을 신화화한 측면이 없지 않다. 물론 이 두 거장의 삶과 예술은 동시대의 삶을 산 가족과 지인들의 숱한 증언들이 증명하듯이, 문학작품 속에 기술된 내용과 거의 일치하는 것이지만, 문제는 과도한 상업주의에 있다. 즉, 치솟는 대중적 인기가 작품이 지닌 우수한 예술성과 맞물려 필연적으로 과도한 수요를 불러일으키게 된 것이다. 이중섭과 박수근 그리고 이우환 하면 연상되는 위작 시비는 바로 이처럼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가 낳은 사달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전시가 지닌 가장 큰 장점은 현재 위작 시비가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검증에 최선을 다했다는 뜻이다. 이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입장에서는 매우 상찬받을만한 일인데, 왜냐하면 미술계의 최고 국립기관으로서 국립현대미술관의 권위는 스스로 세워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발행한 도록은 그 자체 작품의 진위판정을 위한 시금석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최소한 이번에 출품된 작품들만이라도 원작을 싣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때, 향후 박수근 작품의 진위를 둘러싼 논란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다.

작품의 제작연대나 용어, 작가선정, 작품의 진작 여부를 둘러싼 논쟁에서 큐레이터는 실로 무한 책임을 지는 고독한 존재다. 특히 국립현대미술관의 큐레이터는 최고의 상급심 기관인 대법원의 대법관에 비유할 수 있다.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작가를 비롯한 미술관계자의 진술에 의존한다거나, 검증 없이 문헌의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는 행위는 철저히 지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이번 회고전은 약 500여 점으로 추산되는 박수근의 전 작품 중에서 유화를 비롯한 수채화, 판화, 데생, 드로잉 등을 합쳐 170여 점이 출품된 근래에 보기 드문 대규모 전시다. 박수근의 대표작이자 박완서의 소설 『나목』의 배경이 된 <나무와 두 여인>(1962)을 비롯하여 대표작들이 망라돼 있을 뿐만 아니라, 생전에 그가 보던 미술잡지며, 지인들에게 보낸 연하장과 편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들이 전시돼 있어 박수근 예술의 이해를 돕고 있다.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난 박수근(1914-65)은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열두 살 때 밀레의 <만종>을 보고 감동을 받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박수근은 쉰 한살이라는 비교적 짧은 생애를 살다 간 비운의 예술가지만, 그 이름과 작품이 만고에 남을 위대한 예술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 삶의 요체는 과연 무엇인가? 나는 성실성과 진실성, 그리고 미술을 향한 열정과 꾸준한 노력을 들고 싶다. 
이번에 아카이브 자료를 통해 확인한 것이지만, 레제와 피카소 등등 서양의 거장들 작품을 모사한 것을 비롯하여, 해외의 잡지를 통해 추상표현주의 및 당대의 최신 미술사조를 연구하는 등, 박수근은 자신의 실력 향상을 위해 배움을 멈추지 않았다.
박수근은 우리에게 있어 과연 무엇인가? 메타버스와 NFT로 대변되는 속류 자본주의의 광풍이 휘몰아치는 미술계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한 번쯤 이러한 질문을 던져보는 것도 전혀 무익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이 방향타 부재의 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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