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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장 마리 해슬리의 뜨거운 그림들

윤진섭

아마도 지금 50대 이상 된 사람들은 학창 시절에 국어 교과서에서 배운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 1840-97)의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을 기억할 것이다. 이 소설이 출판된 시기는 1871년 보불전쟁이 한창이던 때로 프랑스가 독일에 패배하면서 알자스-로렌 지역을 프로이센에 넘겨주게 된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이인범 아이비리인스티튜트 대표, 전 상명대 교수가 기획한 전북도립미술관의 ‘장 마리 해슬리-소호 너머 소호’(6.24-10.30)전은 바로 이 알자스-로렌 출신의 미국화가 장 마리 해슬리(Jean-Marie HAESSLÉ, 1939- )의 작품세계를 조명한 초대전이다.



장 마리 해슬리전 전시 전경


해슬리는 독일과 프랑스의 접경에 위치한 한 광산촌에서 열네 살의 어린 나이에 광부 생활을 할 만큼 빈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런 그가 미술에 입문하게 된 동기는 원인 모를 병으로 힘겨운 투병 생활을 하던 중 형이 사준 『반 고흐의 생애』(앙리 페뤼쇼, 1957)를 읽게 되면서부터였다. 이 책에 수록된 반 고흐의 그림들을 보면서 장(Jean)은 영혼이 울릴 정도로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런 그에게 미친 반 고흐의 영향은 초기 드로잉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

장의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는 뉴욕으로 이주한 1967년 무렵에 찾아왔다. 이 시기의 뉴욕은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프랑스의 파리를 이어 세계미술의 메카로 부상하는 중이었다. 당시 뉴욕은 앤디 워홀로 대변되는 팝아트를 비롯하여 조셉 코수스의 <하나이면서 세 개인 의자>(1965)로 대표되는 개념미술과, 훗날 국제적 추세로 번지게 되는 미니멀리즘이 강세를 보이고 있었다.

장 마리 해슬리는 독학으로 화가가 되었다. 미술에 대한 그의 독학은 자신의 삶과 예술에 강한 영향을 미친 빈센트 반 고흐의 삶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그 핵심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열정이었다. 예술에 대한 강렬한 열망으로 대변되는 그의 열정은 마치 화산의 마그마처럼 뜨거운 힘의 분출로 이어져 후반기 표현주의의 절정을 이루고 있다.

전북도립미술관 전시는 총 다섯 개의 섹션으로 이루어져 있다. 프롤로그/에필로그 <별의 순간들>, 제1부 <뉴욕 미술 현장 속으로>(1967-78), 제2부 <출발점으로의 귀환>(1979-89), 제3부 <신체, 알파벳으로부터>(1989-99), 제4부 <표현주의 미술의 해슬리적 전형>(1999-현재)가 그것이다. 이 전시를 기획한 이인범은 이 다섯 마당의 개념적 틀로 장 마리의 60여 년에 걸친 예술 도정을 일목요연하게 압축했다.

장의 작가적 편력에서 인상적인 것은 젊은 시절에 겪은 기계제도와 관련된 경험이다. 당시 그가 그린 기계의 도면들이 반 고흐의 영향이 강하게 엿보이는 초기 드로잉과 함께 전시돼 있다. 이러한 아카이브 자료들은 그가 오랜 기간 동안 뉴욕 화단을 경험하면서 산출한 표현주의 풍과 개념미술적 경향을 상징적으로 대변해 준다. 즉, 그의 전 작가적 삶을 지배하고 있는 뜨거운 주정주의(主情主義)와 차가운 주지주의(主知主義)의 교차가 그것이다. 그러나 주정주의에 비해 주지주의는 간헐적으로 다소 미약하게 나타나 있으며, 그의 화력(畵歷)을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것은 역시 삶과 예술에 뜨거운 열정을 표출한 표현주의 풍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특히 장의 다양한 드로잉 작품이 많이 출품돼 관심을 끌었다. 화가의 기본은 무엇보다도 드로잉이란 점에서 이번 전시는 기성작가는 물론 미술을 공부하는 학생이나 미술에 관심이 많은 미술애호가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장의 그림은 아주 세련되지는 않으나, 평생 예술에 대한 열정을 가슴에 품고 산 독학도답게 실험과 미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장의 바로 이 점이 상업주의에 깊이 침윤된 국내 화단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 전시는 10월 2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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