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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인간과 동물 사이, 질문들

윤진섭


박치호전 전시 전경


여수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치호 작가의 특별기획전(6.21-8.21)이 얼마 전에 끝났다. 전남도립미술관이 주최한 이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과의 매칭 프로그램으로 그간 소외돼 온 지역의 역량 있는 작가를 선정하여 비평적으로 지원하는 제도의 일환이다.
이 전시가 주목받는 이유는 서울과 지역 간의 문화적 격차를 줄임으로써 국가적 차원에서 문화와 예술의 균형 발전을 도모한다는 점에 있다. 이는 문화예술의 중앙집중화를 막고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예술의 형성을 꾀함으로써 가능하다는 전제를 바탕에 깔고 있다. 가령, “남도 특유의 서정과 정서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질문과 나아가서 “그것은 구체적으로 예술작품에 어떻게 반영돼 나타나는가?” 하는 질문이 이런 전제로부터 도출된다. 

전남도립미술관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한 ‘2021년 공립미술관 추천작가·전문가 매칭 사업’에 선정돼 이 일련의 전시를 기획했다. 첫 번째로 ‘강운 개인전: 운운하다’가 열렸으며, 이번 박치호 개인전은 그 두 번째 행사이다. 그렇다면 이 매칭 프로그램은 실질적으로 어떤 효과를 유발할 것인가?
우선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비평적 지원이다. 이는 특히 지역이 비평의 취약 지대인 점을 감안할 때 매우 효과적인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작가들의 창작 활동을 북돋우고 그 활동에 대해 비평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박치호의 이번 특별기획전 제목은 ‘BIG MAN: 다시 일어서는 몸’이다. 작가 박치호는 말 그대로 거대한 크기의 인물 드로잉, 캔버스 그림, 인물 조각상들로 넓은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나는 박치호의 작업실을 방문하여 지난 작품들과 에스키스, 다양한 드로잉들을 살펴보면서 이번 전시에 출품한 작품들의 탄생과정과 배경을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전남도립미술관 이지호 관장의 표현을 빌리면 박치호 작가는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를 향해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바다의 작가”다. 그는 전라남도 여수의 ‘경도’라는 섬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추계예술학교를 졸업한 뒤 귀향하여 지금까지 여수를 지키며 작업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 뱃사람을 연상시키는 근육질의 거대한 인물상이 등장하는 이유이다. 박치호는 다양한 근골, 다양한 피부, 다양한 용모의 인물상을 그리고 만든다. 그러나 그가 주목하는 것은 특정한 인물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인물상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다. 그는 이 질문에 대해 작가로서 제시할 수 있는 가능한 한 광범위한 답변을 다양한 조형 방법을 통해 내놓고 있다. 

박치호가 제시한 답변은 가령, <변색동물>(1997-2016) 연작에 나타난 것처럼 속을 모를 정도로 변신하는 인간상을 괴이한 형태의 동물에 비유한 작품들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카멜레온처럼 변신하여 종을 잡지 못할 정도로 황폐한 인간성을 드러내는 인물들에 대해 예리한 메스를 들이대는가 하면, 익명의 인물상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낚아채려는 시도를 줄기차게 벌인다. 198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박치호 작업의 변천을 요약하면 인간과 동물이 벌이는 상황극이라고 할 수 있다. 표현주의풍의 거친 터치와 어둡고 때로는 생경한 원색의 대비를 통해 인간에 대한 탐구를 쉬지 않고 계속해 온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박치호가 뇌리에 떠도는 관념적인 이미지를 그리는 것은 아니다. 그의 그림은 평범한 이웃 남자를 그린 누드화에서 볼 수 있듯이, 실체적이다. 이번 전시의 주력 작품인 거대한 크기의 인물상들은 머리를 생략한 누드화에서 거꾸로 두상만 크게 확대한 조각상에 이르기까지 익명적인 특징을 지닌다.  

박치호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은 작가다. 사실 인간의 다양한 양태를 평면이나 입체를 통해 압축적으로 풀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박치호는 타고난 미적 감각과 부단한 수련으로 이 어려운 일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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