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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빈센트 반 고흐를 생각한다

윤진섭

서른일곱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90)의 예술가적 삶을 지배한 것은 성실함이었다. 그는 십 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 약 1,000여 점에 달하는 작품을 제작했지만, 평생 단 1점의 작품만을 팔았을 정도로 불우했다. 그러나 사후 100년을 넘긴 오늘날 그의 작품 값은 가장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 이 역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리는 고흐에 대한 평가가 요행에 의존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다시 말해서 오늘날 고흐가 누리는 화가로서의 명성과 영예가 전적으로 성실한 그의 탐구 자세와 예술가적 천품, 그리고 따뜻한 인간애로부터 기인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요행이 성실성의 천적이란 점에서 본다면 사후에 찾아온 고흐의 성공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던 것이다. 공자 사상의 바탕이기도 한 성실성(sincerity), 화가들은 이 덕목을 삶의 금과옥조로 삼을 필요가 있다. 시대가 변했다고 해서 인간성의 개념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 알 수 있는 예화를 철학자 칸트의 삶에서 찾아볼 수 있다. 80의 노경에 이른 어느 날 몸이 아픈 칸트가 병실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때 마침 담당 의사가 병실에 들어왔다. 그를 본 칸트는 죽음이 목전에 이르렀음에도 몸을 일으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 모습을 본 의사는 누워 계시라고 만류했다. 그러자 칸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직 인간성(humanität)이 나를 떠나지 않고 있다오.”

이 예화가 가르치는 것은 무엇인가? 피상적으로는 의사에 대한 예의일 수도 있지만, 보다 깊게 성찰해보면 노학자의 겸손일 것이다.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이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듯이, 한 인간에 대한 지극한 겸손이야말로 짐승이 아닌 인간에게만 부여된 고유한 속성. 곧 인간다움의 표시인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 슬픔, 1882


빈센트 반 고흐는 아이가 둘인 매춘여성과 결혼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결혼은 누구나 경원한다. 고흐도 마찬가지였다. 평생의 후원자였던 테오마저 만일 그 여자와 결혼한다면 모든 후원을 끊겠다며 불같이 화를 냈다. 그러나 거리의 노숙자인 이 불쌍한 여인 시엔에 대한 고흐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고흐의 명작 <슬픔>(1882)은 바로 이 여인을 모델로 그린 것이다. 시엔에 대한 고흐의 인간적인 연민과 동정심,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사랑의 감정이 진하게 밴 이 그림 앞에 서면 사람들은 고흐의 흐느끼는듯한 절규를 들을 수 있다. 흐트러진 검은 머리에 깡마른 몸, 늘어진 젖가슴을 지닌 이 비천한 여인은 두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다. 그 자세로는 그녀가 흐느껴 우는 중인지 알 수 없지만, 몸 전체에서 풍겨 나오는 비통함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더는 내려갈 수 없는 인생의 막장에 도달한 이 불쌍한 여인을 거둔 고흐의 연민의 정이 잘 표현돼 있다.

『토지』의 작가인 박경리는 예술의 본질은‘연민’에 있다고 말했다. 타인을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기는 마음, 남의 잘못을 덮어주고 용서하는 관용적 태도에서 연민의 정이 싹튼다. 그 연민의 정이 공동체 사회를 맑게 정화하는 바탕이 된다. 그런데 감정의 산물인 이 연민의 정은 전염력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연민의 정이 사회의 반성적 국면과 결합할 때, 정화의 불길이 강하게 번져나간다.

소포클레스로 대변되는 고대 희랍의 비극은 극단적인 공포심을 통해 인간에 대한 연민의 정을 환기시켰다. <오이디푸스 왕(Oedipus Rex)>에서 부친을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할 저주받은 운명을 타고난 오이디푸스는 신탁의 예언대로 나중에 왕이 된다. 그러나 어느 날 자신의 기막힌 운명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점점 조여오는 파국의 압박에 과감히 맞서 진실을 추구한다. 드디어 증인들의 증언을 통해 자신의 추악한 운명이 드러나자 오이디푸스는 양손으로 자신의 눈을 후벼 파며 절규한다. 자신의 어머니이기도 한 왕비의 자살에 이어 왕위를 버린 채 광야를 헤매는 오이디푸스왕의 가련한 운명!

노예를 제외한 귀족들과 아테네 시민은 석양이 어슴푸레해질 무렵 에피다우로스 극장에 모여 이 비극을 감상했다. 그리고 극도의 공포심을 수반한 연민의 감정을 통해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고 반성했다. 이것이 바로 축제와 제의의 바람직한 기능이다. 공동체적 반성이 없는 제의와 축제는 속 빈 강정이다.

나는 다시 고흐의 <슬픔>을 바라본다. 거기 삶의 나락에 떨어져 오갈 데 없는 한 비천한 여인이 웅크리고 앉아있다. 나는 하나의 그림이 지닌 강한 힘을 느낀다. 예술의 이 거대한 환기력! 화가라면 한 번쯤 도전해 볼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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