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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빨리빨리 증후군

윤진섭

『생활의 발견』이란 명저를 남긴 중국의 임어당 박사는 행복의 조건으로 중용사상과 안분지족의 생활 윤리를 꼽았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가운데 우주와 감응하는 도교와 노장사상, 그리고 실천윤리로써 공자의 중용사상을 바탕으로 한 중국의 철학적 전통은 대륙의 스케일에 걸맞은 중국인 특유의 웅장한 사유체계를 낳았다. 삼국지에서 보듯이 중국인들은 과장도 심하지만, 인간관계에서 신뢰를 중시하며, 풍류를 즐기지만 실리를 추구하는 다면성을 지니고 있다.

나의 경험으로 미루어봐도 중국 친구들은 꾸준히 담배와 차를 권해 친밀감을 표시하며, 식사 자리에서 유쾌하게 웃고 떠드는 가운데 우정을 쌓아간다. 이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술과 담배 그리고 차이다. 따라서 중국인들이 친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꽌시(관계:인맥)’의 형성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술과 담배, 차, 그리고 식사자리에서의 오랜 환담을 통한 정서적 교류와 스킨쉽의 관문을 거친 후에 가능하다.

중국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중국인들의 이러한 대인관에는 알게 모르게 일종의 테스팅 기간이란 게 있는 것 같다. 식사 자리에 사람을 초청해서 장시간 동안 먹고 마시며 담배를 권하는 가운데 오랜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통해 형성된 인간감별의 유전자를 작동시키는 것은 아닌지. 대체로 중국인들이 지식보다는 삶의 지혜를 더욱 중시하는 전통은 무려 2500년 전에 형성된 노장사상에까지 그 젖줄이 닿아 있다.



민초들의 염원과 정성, 그리고 마음이 담긴 마이산의 석탑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이미 오래전에 고 조윤제 박사는 한국인의 특징으로 ‘은근과 끈기’를 든 바 있다. 오랫동안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무궁화처럼 질긴 끈기가 있기 때문에 36년간에 걸친 일제강점기에도 한글을 지켰고, 좁은 땅에서 수십 차례에 걸친 외세의 침략을 극복하고 나라를 지키지 않았을까? 또한, 은근히 뜨거워지고 서서히 식는 온돌처럼 여유가 있어서 자연을 노래하고 백자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시서화가 탄생할 수 있었다.

이 은근과 끈기의 미덕이 ‘빨리빨리’의 조급증으로 바뀐 시점은 아마도 조국 근대화가 강조된 60년대 이후일 듯싶다.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한 제3공화국의 등장과 궤를 같이하는 이 시기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패러다임이 바뀌는 대변동의 시기였다. 그 변화의 중심에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놓여 있었고, 그 당연한 결과로 ‘정신’ 중심에서 ‘물질’ 중심으로 국민의 가치관이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절차를 무시해도 용인될 수 있었던 때가 바로 60-70년대였다. 경제발전을 중심으로 짜인 국가적 아젠다는 초법적 위상을 지니기 일쑤였다. 70년대 당시 관공서는 물론 심지어는 이발소에도 걸려있던 ‘하면 된다’는 대통령의 휘호는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사소한 위법이나 탈법쯤은 대수롭지 않다는 함의를 은연중 내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역사 이래 최대의 국부를 이룬 대통령의 위세 앞에서는 조선 시대 사대부들처럼 “아니 되옵니다!”와 같은 깐깐하고도 날 선 반대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으니 말이다.

한국을 방문한 서양인들이 가장 먼저 배운다는 ‘빨리빨리’라는 단어가 칭송이 아니라, 소통의 단절에 대한 비아냥의 완곡한 표현임을 알아야 할 때가 이젠 온 것 같다. 뿐만 아니라 합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힘의 논리로 몰아붙일 때 먼 훗날 정작 손해 보는 것은 우리 자신이며 우리의 후손들임을 깨달아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인재를 키우는 데에는 더디고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판을 뒤엎고 재를 뿌리는 것은 순식간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금언을 생각한다면, 사회 각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인사에는 신중한 과정과 합리적인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인사위원회의 회의에 올라온 후보들에 대한 검증은 서류에 명시된 기록의 사실에 대한 정확한 검증에서부터 다양한 측면에서 파악한 인물평에 이르기까지, 신중에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이유는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의 어물전을 고양이에게 맡기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에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바보가 있으랴.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힘 있는 사람이 내가 보증한다는 명목으로 고양이를 추천할 때, 대부분의 힘 없는 사람들은 고양이를 고양이가 아니라고 항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의 삶의 터전인 어물전을 진정으로 위하고 사랑한다면, 어물전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인물을 뽑으면 된다. 그 사랑의 진정성은 사람의 오랜 품행에 담겨 있다. 대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잠시는 속여도 오래는 못 속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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