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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밖으로 향한 시선

윤진섭

독립전시기획자인 김노암이 기획한 권여현 초대전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미술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전시가 주목되는 이유는 기획자가 새로운 전시형식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시는 일종의 ‘옴니버스’라고나 할까, 동시에, 여러 곳에서, 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형태의 기획은 권여현 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 다소 늦은 감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늦는 것이 빠를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약 40여 년에 이르는 권여현의 작업 이력을 생각할 때, 어찌 보면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를 쉽게 비유해 군대의 전투로 생각하면, 탄약의 준비는 충분하고 이제 퍼붓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통산 52회의 개인전에 약 400여 회에 달하는 국내외 기획전을 치른 경력을 참고할 때, 그는 ‘준비된 지휘관’이랄 수 있다. 그의 탄약고에는 수천 점에 달하는 수준 높은 대작 위주의 ‘포탄들’로 가득 차 있다.



권여현, 낯선 숲의 일탈자들 Deviators in Heteroclite Forest 4O1A0441, 2022, oil on canvas, 227×181cm


권여현은 내가 어느 글에서 논한 것처럼 ‘변신의 천재’다. 우선 주목되는 것은 ‘융합의 정신’이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작업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회화는 물론, 드로잉, 오브제, 설치, 퍼포먼스, 영상, 심지어는 실험영화에 이르기까지 폭 넓은 장르의 지평을 보여주었다. 그의 융합 정신은 바로 이처럼 다양한 장르로부터 나온다. 아니, 그 이전에 예술을 향해 열린 투명한 의식으로부터 나온다고 하는 편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겠다. 그러니까 음식으로 치면, 밀가루 반죽을 하면서 동시에 그때그때 필요한 양념을 치는 종합예술이 바로 권여현의 작업을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비유적 어휘이다.

그렇다면 권여현 작품세계의 실상은 과연 무엇인가? 나는 90년대 초반에 쓴 어느 글에서 권여현을 가리켜 ‘내밀한 독백형의 작가’로 묘사한 적이 있다. 그리고 혼자 행하는 이‘독백’은 30여 년이 흐른 지금, 그 예민한 촉수를 밖으로 뻗어 사회를 향하고 있다. 독백의 시기 이전까지 작업을 관류한, 시간 축을 의미하는 ‘Y’와 공간 축을 의미하는 ‘X’의 교차점을 내부에서 외부로 옮겨간 것이다. 지금 다섯 곳에 이르는 서울 전시장과 두 곳의 파주 전시장을 합쳐 도합 일곱 곳에 이르는 공간에서 약 250여 점에 달하는 작품을 공개하기에 이른 것은 실로 권여현이 지닌 왕성한 창작열을 높이 산 때문이다. 김노암이란 전시기획자의 예리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중반에 이르는 시기에 권여현의 그림을 관류하는 도식은 ‘Y’라고 하는 시간 축과 ‘X’라고 하는 공간 축의 교차점이었다. 비유컨대 권여현은 바둑판처럼 두 축이 교차하면서 생기는 무수한 정방형으로 이루어진 바둑판 위에 의식의 풍경을 정교하게 그리고자 한 것이다.

권여현은 일곱 전시장에서 벌어진 이번 전시의 주제와 제목을 ‘낯선 숲의 일탈자들’로 정하고 대상을 서양과 서양인으로 설정했다. 말하자면 포신의 각도를 내부가 아닌 외부로 돌려 원거리 사격을 꾀한 것이다. 한국에서 한국인이 서양의 풍경과 서양인을 다룬다? 이 대목에서 대다수의 관람객이 의아해할 것이 불을 보듯 훤하다.

그러나 인스타그램을 비롯하여 다양한 SNS 통신 매체로 무장한 현대인이 MZ세대 이하로 보이는 화면 속의 등장인물이 벌이는 갖가지 행동에 대해 공감하리라는 것 또한 자명하다. 이른바 세계화의 시대에 이젠 안과 밖의 공간적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권여현의 작품을 통해 깨닫게 되기에 이른 것이다. 여기에 권여현이 노리는 것은 지구는 한가족이라는 인류애이며, 그의 근작은 그 실천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다면 그에게 남겨진 향후의 과제는? 물론 해외에 나가 자기의 생각을 널리 알리고 공감을 불러 모으는 일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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