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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전위미술과 ‘진귀한 버섯의 군락지’

윤진섭

미술의 경우 2023년은 ‘실험미술의 해’, ‘전위미술의 전성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분야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전(2023.5.26-7.16)이다. 이 전시는 현재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에서 《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s-70s》(2023.9.1-1.7)라는 타이틀로 성황리에 전시 중이며, 이는 내년에 L.A의 해머뮤지엄(Hammer Museum)으로 옮겨가 5월 12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이처럼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의 전위미술에 대해 유독 관심을 기울이는 이면에는 이른바 ‘K-ART’로 대변되는 한류현상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진행된 한류현상을 되짚어 보면, 대중음악의 <BTS>, 영화의 <기생충>이 올린 성과에 비해 유독 미술분야에서만 이렇다 할 사건이 없었는데, 비록 대중적 관심은 부족하다 하더라도 이번 전시는 가히 ‘역사적’이라고 할 만큼 국위 선양에 이바지한 바 크다.



『한국전위미술사』 전시단행본


또 하나 들 수 있는 것은 현재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전위미술사: 영원한 탈주를 꿈꾸다》전이다. 내년 3월 22일까지 열릴 예정인 이 전시는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부터 신세대미술이 무르익은 1990년대 말까지 한국 전위미술의 흐름을 살피고 있다.

전위미술(前衛美術)은 ‘-앞(前)’이라는 접두어가 의미하듯이, 미술의 최전방에서 거센 물결을 일으키는 일단의 세력 혹은 단체에 의해 형성되는 새로운 미술을 가리킨다. 전위작가들은 군대용어를 빌리면 일종의 척후조(斥候組)에 해당한다. 소수인 이들은 뒤따라오는 본대(本隊)에 앞서 적정을 살피다 보니 위험에 빠질 확률이 높지만, 그만큼 훈장을 탈 기회도 많다. 즉, 목숨을 건 행군을 감행하는 것이 척후조의 활동인 것이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의 이번 전시는 1920년대에서 90년대 말까지 이 땅에서 명멸한 수많은 전위작가와 단체들의 활동상을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소상히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미술단체’인 서화협회회보 창간호(1921)를 비롯하여 1987년에 결성된 신세대 그룹 ‘뮤지엄’의 도록에 이르는 중요한 자료들이 전시되고 있으며, 보다 방대한 저술과 논고 목록이 도록에 실려있어 이 분야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돕는다.

이야기가 다소 빗나가지만, 이 땅에는 지금도 소수의 행위미술가가 활동하고 있다. 그 숫자를 다 합해도 아마 30명 선을 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강국진, 정강자, 정찬승, 김구림, 이승택, 이건용, 이강소, 성능경 등 한국 행위미술 1세대 작가들은 이번 국립현대미술관과 구겐하임미술관 전시에서 입증됐듯이, 한국 전위미술의 원로로서 명예로운 이름을 남겼다.

여기서 전위, 즉 ‘아방가르드(avant-garde)’가 원래 군대 용어였다는 사실을 상기하도록 하자. 도전과 저항을 무기로 새로운 예술의 경지를 개척해 나가는 전위예술가들은 원래 고지전에 능한 사람들이다. 남들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않고 자신의 미학적 신념을 대차게 밀고 나가는 자들이 바로 전위예술가들인 것이다.

현재 한국에는 중견 행위미술가들이 나름 권역을 이루며 맹렬히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 한국행위예술가협회(회장 심홍재)가 결성된 가운데, 서울의 유지환, 전주의 심홍재, 안동의 이혁발, 수원의 김석환, 목포의 문재선, 안동의 윤명국, 부산의 성백, 전남의 김백기, 광주의 김광철 등등이 권역을 이루며 활동하고 있다. 이른바 ‘진귀한 버섯의 군락지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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