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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기하학적 추상미술의 개가

윤진섭

이 땅에 기하학적 추상이 유입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0-30년대부터다. 소위 말하는 ‘모단 보이(modern boy)’ 내지는 ’모단 걸(modern girl)’과 같은 유행어와 함께 카페나 극장이 경성 시내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서구적 근대의 실상을 체험할 수 있는 미츠코시백화점의 등장은 휘황찬란한 조명과 함께 신문물의 견학장 구실을 톡톡히 감당했다.

당시 이상(李箱) 김해경이 지은 다다 풍의 난해시 <건축무한육각면체>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 이 수렴형의 구조는 바로 기하학적 원리에 의해 지어진 근대 건축의 특징을 에둘러 보여준다. 이상은 이 시를 비슷한 구조를 지닌 미츠코시백화점을 둘러보고 썼다.



전시 전경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2023.11.16-5.19)전은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맹아를 보인 1920년대 이후 한국 기하학적 추상의 특징과 흐름을 역사적으로 살펴본 전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썩 잘 꾸민 전람회다. 흔히 말하길 한국에는 기하학적 전통이 희박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기하학적 미술이 뿌리내리기 힘들다고 하는데, 이 전시회는 근대 이후 한국에 기하학적 추상이 면면히 이어왔음을 다양한 작품과 아카이브 자료를 통해 입증함으로써 이러한 속설에 무언의 반박을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덧붙이고 싶은 것은 전통의 확립은 만들고 찾아가는 것이지 쉽게 포기할 성질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국에 왜 기하학적 전통이 없는가? 찾아보면 적지 않다. 이를테면 고대 청동기시대의 다뉴세문경에서부터 빗살무늬 토기, 그리고 전통 창호나 각종 공예품에 이르기까지 근대 이전의 문화유산에서 그 뿌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문제는 전통과 현대를 연결시키려는 학문적 노력의 결여와 예술적 실천의 부족이다. 이것이 큰 병폐인 것이다.

각설하고,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전시회를 구성하는 각 부문별 표제어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새로움의 혁신, 근대의 감각, 2. 한국의 바우하우스를 꿈꾸며, 신조형파, 3. 산과 달, 마음의 기하학, 4. 기하학적 추상의 시대, 4-1. 청년미술로서의 기하학적 추상, 4-2. 미술, 건축, 디자인의 삼차각 설계도, 4-3. 우주시대의 조감도, 5.마름모-만화경.

관객들은 이 개념지도를 따라 1920년대 이후 100여 년에 이르는 근대와 현대의 미적 파노라마를 ‘기하학적 추상’이라는 키워드
로 여행을 하게 된다. 전람회장에 게시된 시들을 비롯하여 각종 인문학적 지식을 보여주는 아카이브 자료들은 전시의 이해를 친절히 돕는다. 1930년대에 일본에 유학한 유영국과 김환기의 기하학적 작품들을 필두로 시기별 대표작들이 망라된 이번 전시는 그런 점에서 충분히 ‘역사적’이다.

이번 전시가 보여준 또 하나의 장점은 다양한 작품과 아카이브 자료를 통해 시대의 감각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특히 새로움과 혁신으로 무장한 1920-30년대의 영화 전단과 잡지 디자인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데, <단성주보>, <제일선>, <신인간> 등의 영화 주보나 잡지의 표지 디자인에 잘 나타나 있다.

전시는 1957년 한국의 바우하우스를 꿈꾸며 등장한 신조형파를 거쳐, 산과 달 등으로 표상되는 마음의 영역을 다룬 ‘마음의 기하학’을 살펴보고, 1960년대 후반에 등장한 전위적이며 실험적인 청년그룹의 연합체인 《청년작가연립전》을 기하학적 추상의 <오리진> 그룹을 중심으로 다룬다. 이어지는 우주의 시대에 대한 고찰은 1969년 7월 21일 미국의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의 달착륙을 기점으로 변모된 기하학적 추상을 살펴보는 것으로 이 전시는 끝이 난다.

과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국립현대미술관의 이번 전시는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다룬 전시로서는 가장 큰 규모가 아닌가 한다. 그만큼 파급력도 크고 향후 미술계에 미칠 영향력도 적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학예팀의 역량이 검증된 좋은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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