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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대의 끝자락, 아이들로 재현된 것

김정현

  모든 사람은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재현한다. 음성과 몸짓, 문자와 이미지 등이 그 재현방식이다. 하지만, 그림만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소통 가능한 것은 없다. 여기 이 두 작가는 아이들이라는 소재를 화폭에 담았다. 무엇을 재현하고자 했을까.


박선양, <Blooming>, 2016, 장지에 채색, 310×130cm, 작가 소장

  2000년 전후로 유소년기를 보냈을 박선양의 작품은 그 구도와 소재로 인해 나이 든 부모님의 사진 앨범에 껴있을 가족사진을 떠올리게 한다. 그 중 <Blooming>은 밝고 화려한 색감 그리고 실제 인물과 같은 작품의 크기로 눈길을 끈다. 가장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은 아이들이다. 아이들과 그 배경이 되는 세계는 바람에 날리는 수풀 형태 안에 존재한다. 작품에 한 발 더 다가서면, 기존 이미지 위에 단순화시킨 석류나무 꽃과 잎들이 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다른 층을 형성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여러 층위로 인해 흐릿해진 아이들의 얼굴은 흔히 사실적 묘사에 충실한 인물화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을 주지않고, 일상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관람객이 자신의 경험을 투영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작가의 이러한 조형은 포토샵과 일러스트 등의 프로그램을 접해온 세대에게 낯익은 것이지만, 친숙한 소재들의 이미지를 새롭게 양식화시키고 결합하여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창작해냈다는 점에서 낯설고 인상적이다. 한편, 아이들은 혼자서 생활을 이어가기 힘든 연약한 존재다. 그렇기에 밝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은 마주하여 안정을 줄 수 있는 보호자와 가족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L.S.로리, <의료대기실>, 1920, 보드 위에 유채, 27.3×40.9cm ⓒThe Lowry Collection, Salford

  20세기 영국의 화가, 로리(L.S.Lowry, 1887-1976)의 <의료대기실>에도 아이들이 등장한다. 화면 왼편에 관람객을 바라보는 듯한 인물이 있지만, 무표정한 그의 얼굴보다는 아이들의 등으로 시선이 향한다. 진찰을 받기 위해 의사의 호출을 기다리는 것일까? 아니면 그들의 부모를 기다리는 것일까?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고개를 들고 누군가를 찾고 있는 듯 보이는 아이들을 통해 관람객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작가가 이 작품을 제작한 1920년은 ‘화려했던 시기’인 빅토리아 시대를 지나 제1차 세계대전으로 대표되는 산업화 후발국가들과의 경쟁을 겪으면서 영국의 사회적 불안감이 높아졌던 시기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보이듯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거친 붓 터치, 그리고 어두운 색채를 이용하다가, 이후 초기작과는 차이가 큰 자신의 화풍을 완성한다. 로리는 그림자가 없는 인물, 날씨표현이 없는 풍경으로 인해 한때 일요화가로 폄하되기도 했으나, 오늘날에는 영국인들이 사랑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자리하고 있다. 삶의 말년에 이르러서도 그는 여러 차례 같은 주제의 작품을 그렸다. 표현론적 관점으로 보면, 이러한 천착은 그의 유소년기를 생각해보게끔 한다. 작가의 어머니는 그를 출산한 후 급속히 쇠약해졌으며, 우울증으로 인해 자주 병상에 누워야만했다고 한다. 작가는 “노동계급을 연민하거나 사회개혁자의 시선을 바라본 것이 아니다. 군중의 모습과 삭막하고 어두운 그 주거공간에서 은밀한 아름다움을 발견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런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평가를 경험론적인 것으로 국한해서는 안 되겠으나, 작품 기저에서 느껴지는 차갑고 쓸쓸한 인상은 개인의 경험과 당시 영국 사회의 분위기에서 비롯된 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작품은 작가의 자화상이며, 나아가 외양으로는 번영하였으나 안으로는 사회적 문제로 신음하던 시대의 민얼굴이다.

  ‘부모보다 가난한 자식세대’라는 이름의 보고서가 2016년에 한 국제 경영컨설팅 회사에 의해 발표되었다. 한국금융연구원 등 국내 정책연구소들과 언론도 이를 인용하며, 급격한 기술변화와 노동시장 양극화, 이전까지 축적된 정부·가계 부채가 부담으로 작용하며 이러한 현상이 고착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2000년 이후 급증한 1인 가구와 전통적인 가족의 해체도 새로운 시대를 예상하게 한다. 번영의 시기를 마치고 황혼기를 걸어야 하는 지금, 쉽게 상실감과 절망에 젖는다. 과거 영국인들과 오늘의 우리 안에 이 감정은 동일할 것이다. 다시 두 작품에 그려진 아이들, 그 아이들로 재현된 것을 본다. 겹겹의 소재로 재조명된 가족 그리고 잿빛의 도시에서 찾아낸 은밀한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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