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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은 가능할까

김정현

  자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야하는 세계 각국의 정부는 지금도 외국인들의 출입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다. 국내 항공사 중 한 곳은 국제선 수요가 전년대비 -99%에 이르렀고, 한 미국 항공사는 위축된 항공여행이 최소 2023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렇듯 물리적 국경을 넘는 여행은 앞으로도 오랜시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자국여행 뿐아니라 이륙과 착륙 장소가 같은, 여행하는 척하는 관광비행 상품에까지 많은 관심들이 몰려있는 것을 볼 때,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바람은 코로나 사태 이전보다 더 강해진 듯 하다. 들뜨기 쉬운 연말을 앞두고 ‘여행’의 의미를 다시 떠올려볼 때다.


제임스 휘슬러, <파란색과 은색의 조화:트루빌>, 1865,
캔버스에 유채, 51×76.7cm, 이사벨라스튜어트가드너미술관 소장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것이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의 말이다. 여행의 의미에 대한 대부분의 격언은 편견과 편합한 시각에서 벗어나 세상과 사람 나아가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데 초점을 둔다. 천식으로 인해 지금의 우리와 비슷하게 삶의 많은 시간을 자신의 방에서만 보내야했던 프루스트는 그의 대표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가상의 화가 엘스티르(Elstir)를 등장시킨다. 엘스티르는 제임스 휘슬러(James WHISTLER, 1834-1903)를 모티브로 한다. Whistler의 W와 h를 제거하고 남은 철자들을 재조합한 것이 Elstir이며, 주인공이 해변마을에 위치한 엘스티르의 작업실에 방문하여 본 작품에 대한 묘사도 휘슬러가 해변마을 트루빌에서 남긴 작품과 겹쳐진다. 피아니스트, 배우 등 다양한 예술가가 소설에 등장하지만 엘스티르만큼 서사를 완성시키는 주요 인물은 드물다. 주인공은 그를 통해 ‘무엇인가 보는 일이 실상 이전에 받아드린 관념으로 인해 대상의 본질과 관계없을 수 있다는 것’을 또 ‘작가는 대상을 해체하고 고유의 시선으로 재구성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처럼 엘스티르와 그의 작품은 주인공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한다.

  오는 11월말,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은 ‘외국연구자의 한국미술 연구’를 주제로 그간 준비한 사업의 첫 번째 결과물을 발표한다. 사업은 국경을 넘는 초국가적 기억으로서 한국미술이 지니는 의미를 점검하고, 심화되고 있는 현실의 다문화성 안에서 한국미술을 문화교류적 측면에서 보다 확대 연구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사업을 준비하며 여행을 떠나온 기분이었다. 외국연구자의 정보를 조사하고, 연구성과를 정리하다보니 외국문헌을 지속적으로 접하며, 외국연구자가 남긴 삶의 발자취를 따라 한국과 그 미술을 낯설게 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외국연구자의 시선을 거친 한국미술 연구, 나아가 다양한 배경과 맥락을 지닌 연구자 자체가 문화교류의 토대로서 그 위에 세워질 내일을 가늠하게 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지난 9월, 사업명을 결정하느라 많은 고민을 했다. 2000년대 중반 대중가요를 즐겨 듣고 불렀다면 버즈(Buzz)의 노래를 불러보거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록발라드 계열의 이 밴드가 발표한 몇 안되는 빠른 박자의 곡 중 2005년 발표한 어떤 곡은 베이스기타의 경쾌한 전주와 작사가 한경혜의 매력적인 가사로 빛을 발하며 대중적인 호응을 얻었다.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은 1970년대 후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국내 화단에서는 잊혀졌던 이병용(1948-2001)의 유작전을 개최했다. 전시는 미국 이민시절부터 제작된 회화, 드로잉 작품 50여 점을 통해 작가가 현대문명의 최첨단인 뉴욕과 그에 정반대되는 섬을 배경으로 펼친 예술세계를 조명했다. 앞서 설명한 박물관 전시, 버즈의 노래, 이병용 회고전의 제목은 동일하게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이다. 프루스트의 소설 마지막장 ‘되찾은 시간’에는 그간 등장했던 많은 인물이 한자리에 모인다. 독자는 이를 통해 그간 복잡하게 진행되었던 전체상을 보다 뚜렷하게 인식하게 되고, 주인공‘ 나’까지도 그간 세계를 비춘 일종의 반사체로서 경험하게 되면서 ‘나’의 경계를 확장시킬 수 있게 된다. 이번 박물관 전시도 그 같은 ‘나’의 확장을 위한 여행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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